시그리드 누네즈의 <어떻게 지내요>를 읽고
죽음에 대해서 그렇듯이 대부분은 나이 듦도 부인하니까. 주변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도,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사례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일이 자신들에게 일어나리라고는 진정으로 믿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어나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지만, 내게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듯이. 하지만 나로선 그것이 축복이라고 늘 생각했다. 나이 드는 것이 얼마나 서글프고 고통스러운지 다 아는 젊음은 전혀 젊음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p.66)
난 때때로 대체 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이 책이 딱 그런데, 읽는 동안 너무 생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걸 주절주절 다 쓰자니 쓸 수도 없거니와 이미 저 세상만큼 앞서 나간 머릿속 생각을 손가락이 쫓아가기가 너무도 까마득해서 시작하기조차 힘든 것이다. 느슨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가 자세를 고쳐 잡고 꼭꼭 씹어 읽었다. 소설인데 소설 같지 않은 느낌이다.⠀
병에 걸려 죽음이 멀지 않은 한 친구가, 때가 되었을 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 위해 떠나고자 한다. 화자는 그 마지막 여행의 동반자로, 그러니까 자신의 죽음을 목격해 줄 단 한 사람이 되어줄 것을 부탁받는다. 큰 스토리는 이런데, 이 과정에서 화자와 친구의 사유들이 빼곡하게 흘러서 함께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는 누구나 죽으니까.⠀
요즘 내가 많은 시간을 들여 생각하는 것들과 결이 비슷한 책이었다. 나이 듦, 늙음, 병, 죽음 같은 것들은 나이를 한 살씩 먹을수록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인데 얼마 전 요양병원에서 일하시는 고모와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에는 생명에 대한 자기 결정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모든 것들이 바람직한 형태로 깔끔하게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많은 논쟁이 있을 수밖에 없는 문제지만, 인간으로서 기대하는 최소한의 존엄도 없이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는 데에는 아마 거의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다가 꺽꺽 울기도 했는데 내가 왜 그랬는지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 지나간 눈물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만큼 어려운 게 있을까 싶다. 그 순간의 감정으로 다시 돌려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나는 흘러가는 대로 너무 온순하게 따라가기만 한 게 아닐까 싶은 내 삶을 생각했고, 늙어버린 할머니를 생각했고, 병에 걸린 내 친구와 나눴던 많은 이야기들을 생각했다. 그런가 하면 살아내는 것 하나도 허덕허덕하는 내가 늙음이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하는 생각도 들어서 너무 매몰되지 않아야겠다 다짐했다. 정말 여러모로 쉽지 않은 책이었다. 그렇지만 사지 않고 대출한 것이 아쉽다. 내 책이었다면 통째로 줄 친 문단들이 수두룩했을 것이다.
그게 사는 거야. 그런 거야. 무슨 일이 있건 삶은 이어진다. 엉망의 삶. 부단한 삶.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 삶. 내가 처리해야 하는.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p.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