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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서가 Oct 27. 2022

완전한 가족, 진짜 있을까?

김미희의 <세 엄마>를 읽고

40대 이후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갈림길에서 나의 두 엄마에 대한 오해, 내 기억의 편향을 바로잡고 싶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앞으로 갈 길을 정할 수 있을 터였다. │책 속에서


저자는 남편을 병으로 먼저 보내고 고통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기억과, 회피했던 '엄마'라는 존재를 마주한다. 어린 시절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는 아버지에게 남매를 맡기고 떠난 친어머니, 그리고 길러준 새어머니가 있다. 이후 새어머니도 아버지와 이혼했지만 아버지를 대신해서 계속 남매를 돌봐주고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40대가 되고 진짜 가족으로 법적인 절차를 밟기 시작하면서 다시 친어머니라는 존재를 만나게 되고 몰랐던 실제 이야기를 듣고서야 오해를 풀게 된다.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엄마가 된 후에야 시작된, 떠나버렸던 친어머니와 자신을 키워 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바로잡는 일. 그 여정과 저자가 살아온 이야기가 있는 책이다. 


가족관계의 문제는 피하고 싶은 소재이면서도 동시에 나도 모르게 이끌리고 마는 소재다. 나에게는 늘 마무리하지 못하는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아마 평생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저자에게는 숙제를 마무리할 계기가 되는 일들이 있었는데 그런 일들이 나한테는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다. 궁금하기도 했고.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저자의 어린 시절 상황은 내 상황과 유사한 점이 많은데, 나는 조부모와 많은 삼촌 또 고모들이 있어 겉으로 보기에 내 상황은 저자보다 아주 괜찮았다. 다만 나는 품앗이하듯 나를 길러준 많은 가족들에게 부채감을 갖고 살아간다. 그렇다고 진짜 뭔가를 갚고 있지도 않고, 아무도 나에게 빚을 갚으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그렇다. 가끔은 조부모님 아래에서 자랄 수 있게라도 해줘서 아빠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스스로가 짊어진 부채감에 가슴이 콱 막힐 때는 원망스럽기도 하다. 나는 아빠를 단순히 '내 아빠'로 인식하기보다는 친구, 가끔은 그저 식구 중 하나로 여겼고 더 솔직히 말하면 그냥 한 명의 인간으로 여겼다. 아빠가 아니고 한 인간으로 인식할 때 좀 더 이해하기가 쉬웠고 좀 덜 원망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들이 있으니까라고 되도록 넓게 생각하면 내 일은 그중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더 견디기 수월했다. 상황이 유사해서인지 저자의 생각들이 놀라울만치 익숙했다.


생각해 보면 말이다. 누가 좋은 엄마 아빠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냐고. 아이를 낳기 전에 자격시험이라도 보냐 말이지. 모든 엄마 아빠들은 엄마 아빠 1회 차 아닌가. 물론 자식들도 자식 1회 차이고. 좀 더 낫거나 좀 더 모자랄 순 있어도 완벽한 엄마 아빠, 그리고 자식이 어디에 있을까 싶다. 그런데도 부모와 자식은 오지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물론 더없을 사랑도 주고받겠지만. 금쪽 상담소만 봐도 사랑하니까 너무 바라는 게 많아서, 너무 사랑하는데 그 방법이 잘못돼서 사랑이 상처가 된다. 인간들은 왜 그럴까. 상처 주고 사랑 주며 열심히 지지고 볶으면서 점점 나아지며 살라고 이렇게 불완전하게 태어나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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