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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서가 Oct 27. 2022

탈육체에 대한 욕망

커먼 마리아 마차도의 <그녀의 몸과 타인들의 파티>를 읽고

나는 불가능한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을 믿는다. 사랑이 잔학성을 누를 수 있고,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상쇄하거나, 아니면 더 아름답고 새로운 무언가로 바꿀 수 있는 세상. 사랑이 본성을 이길 수 있는 세상. (p.96)


오랜만에 무척 신선한 이야기를 읽었다. 낯설지만 굉장히 잘 읽혔다. 그렇다고 쉽다는 말은 아니다. 이 책은 표지만큼이나 강렬한데 말하자면 초.감.각.적 이었다. 내 몸에 느껴지는 감각을 마구 건드리고 육체를 소재로써 마구 활용하는 느낌. 거기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신선한 표현들의 축제다! 미쳤다.

첫번째 이야기인 <예쁜이 수술>은 낯설지만 계속해서 다음 이야기를 읽고 싶게 만든 이야기로 으스스한 듯 한데 궁금하고, 어째선지 사랑스럽기도 했다. (다소 어울리지 않는 표현의 나열임을 인정한다.) 또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현실의 여자들은 몸이 있다> 아슬아슬하고 쓰라리면서도 몸이 투명하게 사리진다는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느낌이 묘했다. 가장 좋았던 이야기는 <여덟 입>인데 '몸'에 대해 이렇게 강렬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다니. 포장없이 솔직한 육체에 대한 표현, 그리고 혐오는 충격적일 정도로 멋졌다. 내 몸을 컨트롤 하고 싶은 욕망이 큰 사람이라 이 이야기가 더 인상적으로 느껴졌을거다. 스스로 또는 타인에 의해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방식, 평가받는 방식은 아무리 부드럽게 표현해도 들여다보면 결국은 아주 난폭하다고 생각해서 <여덟 입>은 나에게 마치 직구 같은 생생한 감각을 느끼게 하는 문장들이었다.

나는 가끔 '탈육체'의 욕망을 느낀다. 내가 여성도 남성도 아닌 그냥 육체가 없는 사람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욕망해보는 것이다. 내 육체는 나라는 것을 담고 있는 그릇 아닌가. 아무리 정신이 더 중요하다며 몸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홀대해도 결국 그 정신을 담고 있는것도 몸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를 특징하는 것들이 결국 내 육체의 성질에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것이 너무 당연하면서도 가끔은 속이 울렁거릴만치 지긋지긋하다. 이 책이 낯설고 어렵지만 내가 끝내 놓지 않았던 것은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육체적 감각'에 매료되어서다. 잘 설명하긴 어렵지만 육체를 신성하고 고귀한 것이기보다 그저 소모되어질 껍데기로 만들어버리는 대담한 표현들에 어쩐지 속이 시원했고 거기서 나는 탈육체라는 대리만족 이상의 홀가분한 느낌을 받았다. 참 이상한 책이다.⠀


아내는 늘 내가 무언가를 사랑하거나 증오하는 데는 즉각적이면서도 그 이유를 분명히 설명하는 데는 몇 개월씩 걸린다며 나의 느낌과 감각에 대해 놀려댔다.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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