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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서가 Oct 27. 2022

불안, 우연의 선택, 울분

필립 로스의 <울분>을 읽고


그래, 멋지고 오래되고 도전적인 미국의 "좆까, 씨발" 그것으로 정육점집 아들은 끝이었다. (p.238)


마커스 메스너는 미국 뉴저지의 유대인 동네에서 코셔 정육점을 운영하는 집안의 외아들이다. 말 잘 듣고 바른 아이였던 마커스는 아버지를 도와 정육점 일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정직하고 성실한 아버지는 마커스에게 영웅이었다. 이런 부자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마커스가 대학에 진학할 때였다. 이성적인 존재였던 아버지는 마커스가 위험한 상황에 놓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하고도 강력한 두려움으로 불안에 떨고 마커스를 속박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마커스는 대학 진학을 이유로 집안에서 도망치듯 멀어지게 된다. 대학생활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룸메이트들과의 관계, 사랑하는 올리비아의 관계는 마음대로 되지 않고 어릴 때부터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아이였던 것이 무색하게도 학과장과의 대면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울분을 토하며 폭발한다.


사실 아버지의 불안은 정도가 좀 지나치다고는 하나 어느 정도는 이해 가능한 것이었다. 실제로 마커스 또래의 친척들은 하나같이 전쟁에서 죽었고, 갓 성년이 된 사람에겐 치기 어린 선택으로 인생의 발을 헛디디는 일이 많으므로 영 터무니없는 걱정은 아니었다. 마커스가 살면서 쏟아내 본 적 없던 감정들은 울분이 되어 생각지 못했던 상황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그렇게 튀어나온 감정은 돌이킬 수 없고 이후에 일어난 연쇄적인 일들 역시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법이다. 이게 삶의 아이러니일까. 에라 모르겠다, 그런 느낌 말이다.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고 그렇게 되다 보니 결국 걷잡을 수 없이 끝장나버린 느낌. 그야말로 울분을 토해내며 끝나버린 마커스의 젊고도 짧은 삶의 이야기.⠀


여담이지만, 마커스의 아버지는 우리 할머니와 참 비슷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이라지만 매일을 그렇게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흉악한 범죄를 상상하며 단속하고 또 단속했던 우리 할머니.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모든 것은 범죄에 휘말리기 딱 좋은 일이라는 듯이. 이런 상황에서 살아보면 스트레스도 스트레스지만 그것보다 더 안 좋은 것은 불안이 전염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의 영향으로 아직도 전화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전화벨만 울리면 불안하다.(주로 집에서 오는 전화) 아빠도 한몫했다. 이런 식이었다. 차에 치일 위험이 있으니 골목에서 뛰어나가지 말아라 하면 될 것을 굳이 뛰어나가서 차에 부딪히면 어떻게 될지 알려주는 식이었다. 덕분에 교육 효과는 높았지만 나는 모든 상황에서(별 시답잖은 상황에서 조차도) 최악의 나쁜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럽고도 신속하게 내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어릴 때 나는 항상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최대한 빨리. 좀 더 이리저리 재보면서 천천히 취업 준비를 해도 좋았을 텐데 지금에 와서 보니 당시에 나는 너무 쉽게 취업을 결정해버렸던 것 같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어려서 장기적으로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눈 따위는 없었을 것이고(물론 지금도 없다) 생각할 수 있다고 해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분명 또 같은 결정을 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 할머니와 아빠가 보면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저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키고 싶었을 뿐일 텐데.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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