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대화의 흐름을 자꾸 놓친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 나이 들어서 귓구멍이 막혔거나, 집중력이 떨어져서인 것 같다.
청력이 떨어진 것은 일단, 맞다.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하면 잘 안 들린다. 어린아이들은 고주파를 잘 듣고 나이 들수록 못 듣는다고 하던데, 고주파도 아니고 평범한 주파수며 소리만 작을 뿐인데도 잘 안 들린다. 잘 안 들리니 못 알아듣고, 못 알아들으니 한번 더 말해달라 요청한다. 하지만 이런 요청도 한두 번이다. 한 번 더 말해줬는데도 못 알아들으면 또 다시 말해달라고 말하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약간 창피)해서 대충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재빨리 말의 앞뒤 내용을 분석해서 이러저러한 내용이었을 것이라 추론하곤 대화를 이어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집중력 저하도 맞다. 상대방이 길~~~게 얘기하면 어느 순간 정신이 몽롱해지며 말의 내용보다 말하는 자의 머리 모양을 살피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한눈 판 뒤, '상대방의 말이 끝나면 나는 더 쎈 에피소드를 말해야겠다'라며 딴생각을 하다가 결국 대화의 맥락을 놓친다. 다시 한번 대충 알아들은 척 고개를 주억거리고 눈치껏 말을 이어간다.
어릴 때는 안 그랬다. 부모님의 기나긴 훈계 말씀에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경청하며 나의 의사를 매 순간순간 전달했다. "아빠가 혼내는데 어디서 따박따박 말대꾸냐!"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못 알아듣고 딴소리냐"라는 말은 듣지 않았다. 웅얼웅얼 하셨던 교장선생님의 연설도 잘 들렸고, 건너건너편에서 친구의 뒷담화를 하던 아이들의 소리도 잘 들었다. 그랬던 내가 코 앞에 앉아 있는 사람 소리도 제대로 못 듣다니... 어쩌다 이렇게 됐지? 점점 나이 먹으면서 듣기 싫은 소리 안 들리는 척, 못 들은 척하며 살다 보니 이제 진짜 못 듣게 되었나? 역시 나이탓인가. 쳇.
지난주 아침, 출근중이던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부인, 지금 4호선 탔는데 지하철 안의 전광판이 고장 났어! 상행선 탔는데 하행선 역 이름이 나온다."
다음 역을 보여주는 전광판 시스템이 고장 났나 보다. 곧 역장의 육성 안내방송이 들린다는 카톡이 연이어 왔다.
"부인, 다음 역이 스테이크라는데! 스테이크?"
4호선에 스테이크?
[다음 역은 스테이크, 스테이크 역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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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입구'였다.
남편도 나도 귓구멍이 막혀간다. 귓구멍이 막혀서 우리의 4호선엔 '스테이크'역이 생겼다. 중년의 우리는 청력을 잃었지만 유머를 얻었다. 됐다. 이 정도면 훌륭한 교환이다. 미운 소리까지 또박또박 들리던 청춘이여, 안녕이다. 나이 어쩌고하며 투덜거리는 것도 오늘로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