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충치 치료를 그토록 오랫동안 묵혀두었을까.
수십만 원에 달하는 치료비가 부담스러웠던 걸까.
아니면 충치를 걷어내고, 본을 뜨고, 다시 메우러 와야 하는 그 번거로운 과정을 감당할 시간과 체력,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걸까.
몇 년 전만 해도 ‘다음에 해도 되지 뭐’라며 청춘의 건강을 과신했으니, 어쩌면 그건 객기였을지도 모른다.
미룬 이유는 흐릿하지만, 충치 사진을 보며 ‘아, 번거로운 일이 생겼구나’ 하고 생각하던 순간만큼은 또렷이 기억난다.
처음 치과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금’으로 메울 생각이었다.
금값이 연일 치솟고 있다는 소식에 재테크 차원에서도 이득이라 여겼고, 이제 어금니에 금빛이 조금 보인다고 해서 부끄러울 나이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미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과 치위생사님의 설명을 듣고 결국 치아색과 같은 소재를 택했다.
가격이 같다면 금이 더 합리적인 선택 아닐까 하는 세속적인 계산이 스쳤지만, 곧 어리석은 생각임을 깨달았다. 내 몸에 박힌 금을 다시 떼어낼 상황이란, 내가 죽거나, 치아가 완전히 망가지거나, 혹은 장기는 못 팔지언정 금니라도 팔아야 할 만큼 궁지에 몰린 순간뿐일 테니까.
죽어서 누군가에게 금니를 남겨줄 것도 아니고, 씽크홀처럼 긁어낸 자리가 다시 망가질 정도라면 그때는 이미 임플란트를 고민해야 할 나이일 것이다. 언제 올지 모를 ‘금니 팔 상황’을 걱정하기엔, 나는 당장 월요일 아침의 출근이 더 무서운 평범한 직장인이다.
무엇보다 아침마다 거울 속 내 어금니에서 번쩍이는 금빛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충치가 곧 노화의 지표는 아닐지라도, 피부와 머릿결이 하루가 다르게 푸석해지는 시기에 금니까지 더해지는 건 상상만으로도 서글프다. 마치 “당신의 청춘은 여기서 끝났습니다”라고 금색 실링왁스를 치아에 찍어, 내 삶의 한 페이지를 봉인해 버린 듯한 기분이 들 것만 같았다.
드디어 본뜬 조각을 붙이러 아침 일찍 서둘렀다.
치위생사님은 미색의 작은 조각을 보여주며 본도 잘 떴고 색도 잘 맞는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얼굴에 천 조각을 덮고 진료 의자에 누웠다. 선생님의 손길과 치위생사님의 호흡이 맞물리며 조각을 붙이고, 높이를 맞추고, 모양을 다듬는 세밀함이 보이지 않아도 느껴졌다.
귀를 때리는 기계 소리는 요란한데, 손톱보다 작은 조각과 치아를 하나로 만드는 손길만큼은 섬세했다. 그 순간 문득 ‘킨츠기(Kintsugi)’ 공예가 떠올랐다. 깨진 도자기를 금이나 옻으로 이어 붙여 새로운 예술품으로 만드는 작업.
충치 치료가 의술과 예술이 결합된 정교한 행위처럼 느껴졌다. 치아를 내 몸에 심는 하나의 조각품이라 생각하니, 치료비도 아깝지 않았다.
마무리를 하고 나니 가슴 한구석이 후련했다. 이제 나의 저작생활도 한층 편안해질 것 같다. 찬 음식을 먹을 때 잠시 시릴 수 있다는 주의사항을 뒤로하고 치과를 나섰다. “사랑니 뽑을 마음의 준비가 되면 또 오세요”라며 웃던 치위생사님의 인사가 귓가에 남는다.
이를 고쳤다기보다 미뤄두던 마음 하나를 손본 기분이 든다.
자, 이제는 사랑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