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온도
물을 잔뜩 뒤집어쓴 진초록의 여름 나무 사이로,
식물원 열대관에 들어선 듯한
물기와 열기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 순간, 여름이 이렇게 반가운 건 처음이었다.
오늘도 날씨는 들쭉날쭉했다.
비가 온다더니, 출근길도 점심시간도 퇴근길도 비는 비켜 갔다.
후덥지근하다 흐렸다가, 비가 쏟아졌다가, 금세 그쳤다.
어릴 적 나는 가을을 좋아했다.
선선한 바람, 알록달록한 단풍, 적당히 일찍 지는 해.
익숙하고 무난해서였을까.
봄은 늘 불안했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 낯선 교실, 낯선 얼굴, 답을 모르는 문제들로 가득 찬 새 교과서…
봄꽃보다 먼저 피는 건 해소되지 않는 걱정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봄도, 여름도 좋아진다.
봄의 생동감과 여름의 짙은 에너지가 낯설지만 매력적이다.
여름에 태어났지만, 한때 내게 여름은 그저 더운 계절, 그리고 방학뿐이었는데.
이제와 봄과 여름이 좋아진 건 아마도 결핍 때문이 아닐까.
식상한 비유일까, 익숙한 비유일까.
인간의 생애를 계절에 비유하는 표현을 빌려보자면, 내게도 봄 같은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성숙하고 안정된 가을이 끌렸던 것 같다.
이제는 객관적인 청춘과 멀어진 나이가 되니,
그 시절의 날 것 같은 격정과 역동의 에너지가
새삼 그립다.
나이 든다는 건, 몰랐던 걸 알아가는 내가 되는 것,
익숙해지는 게 늘어가는 것,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늘어가는 것,
그래서 때로는 서글픈 일이다.
오늘 동네 공원의 나무들은 마치 물을 잔뜩 뒤집어쓴 청춘들 같았다.
워터밤 한복판에서 웃고 있는...
나 어릴 땐 워터밤... 그런 거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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