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무게
이틀 전, 우연히 페북으로 대학생 시절, 노년의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강의를 하시던 교수님이 최근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슬픔이 몰려오기보다는 그 분과 함께 했던 4년 간의 대학 생활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기억 속에서 지나쳐 감을 느꼈다. 선생님께서는 조선 성리학 분야의 거목(巨木)으로, 그 분야에서만큼은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전문가이시자 권위자이셨다. 다만 그 분이 강조하는 학문적 날카로움과 식견을 대부분의 학부생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비웃었다.
실례로, 광해군이 중립 외교를 펼친 유연한 군주라거나 실학이 조선 후기에 개혁 운동이라는 논지를 펼치면 가차 없이 형편 없는 학점과 동시에 눈도장에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부 학생들은 그 분의 강의를 형편 없게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분의 학술서(강의 교과서)를 읽으면서 그 분의 논지가 철저히 학문에 근거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또한, 팀플을 준비하면서 그 분이 왜 유난히 조선과 성리학을 중요시하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또한 수업 시간마다 질문을 하셨는데, 원하는 답을 하는 학생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맨 앞에 앉은 나에게 물으시면 나는 그 때마다 원하는 답변을 했고 매우 흡족해 하셨다.
나에게 선생님은 진정한 학자이셨고, 참된 스승이셨다. 뒤늦게나마 부고금을 보내면서 나는 가족분에게 나에게 만큼은 선생님은 진정한 학자셨고 교육자이셨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선생님께서 분명 감명 받으셨을 것이라며 보낸 부고금은 선생님이 이루지 못하고 남은 학술적 결과물이 편찬되는데 쓰겠다고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답장이 왔다. 선생님은 가셨지만 선생님이 남기신 저술들과 학술적 업적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며, 후학들과 더불어 나의 기억과 삶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 여기며 말로 표현 못할 슬픔을 위로했다.
중국의 오대 십국 시기 후량의 왕인장이 다음과 같은 속담에 감명을 받아 죽는 순간까지 외웠다고 언젠가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해당 글귀는 다음과 같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호사유피인사유명(虎死留皮,人死留名) 사람은 짐승과 달리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물론 외면적으로 남긴 것도 있겠지만은 내면적으로 남긴 인생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