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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빛 Jan 25. 2022

단단한 삶을 찾아서

<전념 - 나와 세상을 바꾸는 힘에 관하여>, 피트 데이비스

1. 오래된 질문 - 올바른 삶이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는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며 서양 문명에 철학의 시작을 알렸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스승의 세상을 발전시켜 객관적이고 온전하며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 '이데아'를 구상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이데아를 지상의 현실로 확장시키면서, '인간의 행복은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며, 덕을 추구하는 활동이고, 인생 전체에 걸친 활동이다.'라고 정의하였다. 그렇게 인간의 '올바른 삶'을 찾는 도덕과 윤리에 대한 사고가 시작된다(물론 어디까지나 서양 철학의 전통에 한정하여  그러하다는 것이다).

고개를 떨군 제자들과 대비되는 하늘을 가리키는 소크라테스.  



2. 무한 탐색 모드와 전념하기


책 <전념>은 어느 순간 잊힌 그리스 철학자들의 오래된 생각 위에 쌓여있던 근대 이성주의의 먼지를 털어내고, 경쟁과 효율에 잠식당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추구할 수 있는 '올바른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묻는다. 저자의 주장은 첫째, 현대 사회의 지배적 문화는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 리스트' 사이를 헤매는 것 같은 '무한 탐색 모드'에 돌입하였으며, 둘째, 이러한 유목민적 탐색 모드에서 상실된 자아를 찾기 위해 '전념하기 반문화'의 확산이 필요하고, 셋째,  '선택지 열어두기'가 지배하는 경제-도덕-교육의 영역에서 신뢰, 헌신, 책임감, 명예, 공동체와 같은 고전적인 가치를 부활시킴으로써 '삶의 공터'를 정원으로 가꾸어나갈 수 있다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책에는 시장이 아닌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자기 나름의 '무엇'에 전념, 헌신, 봉사하는 활동을 통해 결국 '더 나은 인간'이 된 수많은 역사적 사례와 이를 뒷받침하는 사상가들의 생각이 등장하며, 마치 자기 계발서의 레퍼런스를 읽듯이 이러한 전념 성공 사례 하나하나를 읽고, 자신의 삶에 그대로 적용해보는 것은 그 자체로 오늘, 독자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지그문트 바우만과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책의 마지막 '영향을 준 글' 챕터에서 직접 고백하듯이, '전념하기'에 대한 저자의 이해는 고대 철학을 복원하고, 근대의 한계를 지적하며, 현대인의 삶을 개선시키려 한 헌신적인 사상가들의 생각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대선을 앞둔 현재 우리 사회의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 특히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두 사상가를 꼽아보면, '유동하는 근대' 개념을 착안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 공동체주의와 덕윤리를 복원시킨 도덕철학자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 게오르그 루카치 <소설의 이론> 서문 


루카치의 황홀한 문장처럼 한 때 인간은 모든 것이 빛나고 확실하게 만져지는 단단한 고체의 시대를 살고 있었다. 그 단단함을 '종교, 신화, 권위, 관습, 전통..' 무엇으로  호명하든 간에, 자신이 속한 고체 안에서 그 단단함을 평생 충실하게 따라 사는 인간은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성과 합리의 근대가 도래하고 근대인들은 고대, 중세를 무지몽매한 비합리의 시대로 선포하고, 새로운 인간의 시대를 선포한다. 인본주의, 과학주의, 이성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같은 근대의 개념은 빠르게 과거의 비합리적인 믿음 체계를 치워버리고 새 시대의 복음을 선포했다. 


하지만, 케케묵은 구속을 던져버리고 새롭게 출발한 인간들은 어느 순간 당혹감에 빠진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내가 어제까지 알고 있던 것 중에 오늘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새로웠던 것은 이미 진부해지고,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는 챗바퀴를 돌려야 한다. SNS라는 가상의 관계가 등장하면서 은밀한 사적 영역도 다 과시와 판매의 대상이 되고, 하루 종일 어딘가에 접속하여 유령처럼 배회하는 삶이 계속된다. 바우만은 이러한 예측할 수 없고 불확실하며 불안한 근대의 복잡한 개념을 '액체 근대'라는 이미지로 설명하며, 인간 상호 간의 유대와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복원해 인간 존엄을 회복해야 함을 역설한다. 


바우만의 '액체 근대'론은 지금 이 시대의 도덕이 위기에 처했음을 경고하는 매킨타이어의 주장과도 맥이 닿아있다. 매킨타이어는 사회의 도덕과 규범이 형해화되면서 '나에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다원주의의 시대가 도래했고, 공공성을 책임진 정부는 사회 가치 판단의 문제를 경제적 효율과 유용함의 문제로만 바라본다고 지적한다. 오로지 성공만을 바라는 개인들만이 남은 현대 서양 사회에서 도덕은 상대화되고, 공동체는 해체되며, 정체성이 없는 "유령적 자아"만이 산출된다는 것이 매킨타이어의 단언이다. 


도덕이 사라지고 유령들이 떠도는 사회의 해법으로 매킨타이어는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을 따라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도덕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우리에게 가치 있는 삶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인간이기를 원하는지, 우리 모두가 추구할 수 있는 공동선이 존재하는지. 이러한 바람직한 인간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인간의 역사와 전통 속에 퇴적되어 있으며,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의 꿈과 희망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것이 매킨타이어의 해답이다. 



4. 인간이 이룰 수 있는 '평범한 탁월함' 


<전념>에는 이러한 두 사상가의 현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제안하는 해법을 어떻게 현재 우리 삶에 '전념하기'의 방법으로 적용시킬 수 있는지에 관한 다양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dedicate(헌신하다)'라는 단어에 '무언가를 신성하게 하다(dedicate a memorial 기념비를 세우다)'와 '오랫동안 무언가에 전념하다(She was dedicated to the project 그녀는 그 프로젝트에 전념했다)'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무언가에 전념하기로 선택하는 것은 곧 신성한 일'이라는 것이다. 유한한 인간은 헌신하며 특정한 순간을 신성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헌신을 유지함으로써 삶의 수많은 평범한 순간을 비범하고 탁월하게 만들 수 있다. 믿고 의지할 것이 사라진 시대, 시장이 주는 무한한 경쟁의 공포만이 남은 시대에 일단 오늘 나의 하루를 정원을 가꾸듯이 변화시켜 보라는 위안과 통찰을 전달해주는 책이다. 


"단 한 번뿐인 소중하고 돌이킬 수 없는 삶을 위해 당신은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가?"  
- 시인 메리 올리버   


"어떤 사람이 나무를 심었다. 하나, 둘 , 셋, 그렇게 꾸준히 많은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그 나무가 어느덧 숲을 이루었다."  
- 폴란드 연대 운동의 첫 번째 사제이자 철학자인 요제프 티슈너


"내 묘비에는 이렇게 새기고 싶어. 이 사회와 이 세계를 모두에게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 했다고 말이야."
- 저자가 속한 지역 공동체의 '슈퍼맨'. 아네트 밀스.


※ 싱큐베이션 12기 첫 번째 선정도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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