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움 Jul 30. 2024

사람들이 우리 아빠 엄마를 공격한다

그리고 나도?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부모의 직장에 같이 다니지 않는다. 물론 사업을 운영하거나 함께 농사를 짓거나, 가게를 하거나 가업을 물려받는 등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일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가 사업장에서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떻게 윗사람에게 욕을 먹고 어떻게 주변인들과 지내는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목사의 자녀들은 부모의 직업장에서 부모가 하는 일을 오롯이 봐야 하고 부모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는지도 여실히 본다. 심지어 함께 일을 하고 함께 관계를 맺기 때문에 매우 깊이 관련되어 있다. 작은 교회일수록 더 하고 자녀가 성인이 될수록 더 깊이 관여된다.

 유명인의 자녀들도 비슷하리라 생각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집중하여 보고 있는 부모가 때로는 존경받고 추앙받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평가받고 오해받고 욕을 먹고 공격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그 모든 걸 다 지켜봐야 하는 자녀는 때로는 너무나 무력하고 고통스럽다.

 어느 교회나 갈등이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없을 리가 없다. 십자가에 다 박지 못한 인간들의 본성과 죄성이 남아 꿈틀대면서 가지 각양의 모습이 발현된다. 교회 성도들끼리도 분란이 많지만 교회 목사와 사모를 향한 공격도 무수하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개척교회에서만 30년이 넘게 있었고, 내 부모님의 교회 생활은 그전에도 뭐 많았겠지만 나는 없었거나 너무 어려서 잘은 모르겠다. 그냥 아주 다양한 사건 사고가 넘쳐난다는 것은 명확하다.  

 사실 어렸을 때는 교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하나도 몰랐다. 당연했고 그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점점 크면서, 엄마와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되면서(그것이 우리 엄마에게는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마음의 해소와 풀이 과정일 것이다) 알게 된 것들이 많은데, 몰랐던 때가 나았던 것 같다. 때로는 인간 자체에 환멸이 느껴져 나조차도 너무 힘이 들고 버겁고 괴로울 때가 많은데 그냥 괜찮은 척하면서 듣는다.

 목회자에 대한 오해, 개인적 감정과 상처에 대한 잘못된 해소, 목회자와 사모에 대한 지적질, 가르치려 드는 태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는데서 오는 원망, 자신을 더 높이 써주지 않는 데서 오는 적대감, 사기, 목회자를 향한 연애 감정, 그것을 받아들여주지 않는 데서 오는 상당한 분노(내 엄마에 대한 강한 질투- 부부 사이가 좋으니 또 이런 어이없는 일도 생긴다) 등등 종류도 많고 정말 어이없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이 많다. 젊은 시절의 아빠는 멱살도 엄청 잡혔단다. 심리적, 신체적 고통이 가지각색으로 주어진다.

  정말이지 인간의 추악한 면모는 수없이 본 것 같다. 신앙의 집단이라 그런 사람들조차도 ‘주’의 이름으로 품어야 하고 견뎌야 하고 사랑까지 해야 한다고 배우며 자랐는데 너무 힘든 것 같다.


 기독교는 절대 쉬운 종교가 아니다. 그냥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게 끝이 아니라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부대끼며 사랑하고 높여주고 베풀어 줘야 하는 그 어려운 훈련을 계속 해야 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안에서 목회자인 아빠와 엄마는 얼마나 많은 공격의 대상이 되었던가. 그걸 지켜봐야 하는 나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지는 것 같은 때가 많았다. 


우리 부모님은 특히나 몸도 많이 안 좋고 병도 많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마음의 병이 몸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정말 만병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여 여기저기 병으로 나타나고 불면으로 밤잠 설치며 고통스러워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니다. 아주 자세한 상황이나 그때의 인간적인 감정은 어떤지 부모님이 나에게 다 말해주지 못하겠지만 눈과 귀가 있는 성인의 목회자 자녀는 여기저기서 들리는 걸 조합하여 이미 다 알고 있고, 집안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부모를 여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이미 분노 게이지는 이미 차고 넘쳐흐른다.

 그럼에도 ‘원수를 사랑해야’하는 교회 집단이기 때문에, 그런 성도들까지 품고 진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부모를 보며 그러지 못하는 내 자신을 더 비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 버겁고 고될 때가 많았다. 난 도저히 안 되는데? 난 도저히 용서가 안 되고 곱게 바라봐지지가 않는데? 


인사조차 하기 싫고 눈도 마주치기 싫은데 애써 웃으며 경련이 일어나는 입을 부여잡고, 끓어오르는 분노의 마음을 삭혀가며 계속 함께 지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역겹고 힘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목회자 자녀는 부모와 같은 공격의 대상이 된다. 내 부모에 대한 감정이 약하고 만만한 자녀에게 쏟아진다. 내 동생은 어린 시절, 심지어 길을 가다가 지나가는 성도에게 아무 이유 없이 맞았다고 한다. 나에게도 이야기 좀 하자며 드잡이하던 성도들도 많았다. 성인이 된 자녀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전달하는 이야기를 마치 부모에게서 나오는 메시지인 양 오해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나와 동생에게 가차 없이 ‘공격’했던 자신들의 행동과 언어는 잊은 채 우리가 조금이라도 방어하는 태도를 보이면 목회자인 부모가 자신들에게 의도가 있고, 개인적 감정이 있다고 멋대로 오해하며 욕을 늘어놓는 어처구니없는 인간들도 있었다.  

 내 부모를 공격했던, 마구 드잡이했던, 그래서 잠 못 이루게 하는 원흉이었던 인간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의 고통은 배가 된다. 다른 교회를 다니다가 우리 교회를, 내 부모인 목사님, 사모님을 잊지 못하겠다며 다시 돌아온 몇 성도들이 있었다. 내 부모는 그들을 주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받아들였을지 모르겠지만 신앙심 부족한 나는 그게 잘 안된다. 내 부모를 아프게 한 그 사람들이 곱게 보일 리가 만무하다. 째려보거나 욕을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나는 그럴 깜냥이 되지도 않았지만.

 어느 날은 전화가 왔다. 꼴도 보기 싫어서 돌아온 그들에게 굳이 찾아가서 웃으며 인사하지 못했다. 마주치기도 싫으니 그냥 피했다. 표정 관리가 안 될 것 같았다. 그런 나에게 굳이 찾아와서 ‘인사 좀 하고 다녀라’고 한 그 어른에게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그랬더니 다음 날 그 딸이 나에게 초등학교는 나온 거 맞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며 전화를 하더라. 지는. 지는 우리 부모에게 인사도 안 하는 주제에. 누가 누구를. 정말 어이가 없는데 우리 부모에게 해가 될까봐 단 한 마디를 대응하지 못하고 듣고만 있었던 내가 치가 떨려 눈물이 났다. 아직도 가끔 당시를 생각하면 끓어오른다.

 뭐 이런 에피소드가 적어도 수십 개는 될 것이다. 부모와의 관계가 자녀에게까지 도달하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특히나 부모에게는 감히 하지 못할 언어나 행동의 폭력을 만만한 자녀에게 전가하는 못난 사람들. 그들에겐 목회자 자녀가 동네북인가 보다.



 이런 분노들이 쌓여 내 동생은 교회와 인간 자체에 대한 악감정이 꽤 오래 쌓였고 꽤 많이 힘들어했다. 나는 사회성 좋은 척 하며 최선을 다해 잘 스며드는 연기를 해내었지만 내 마음 속에도 깊은 분노와 인간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은 스며 있는 듯하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야 하고 어디까지 용서해야 하는지, 우리의 숙제는 끝이 없다. 

이전 03화 나만의 아빠가 아니다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