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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움 Aug 06. 2024

나는 목사가 아니라고!

교회 일에 대하여



 작은 교회의 목회자 자녀는 할 일이 아주 많다.

뒤에도 이야기하겠지만 반주는 기본 반찬(보통 피아노, 기타, 드럼은 기본이다), 주보, 영상, ppt, 성가대, 교사, 성경 공부, 심지어 나는 설교에 수련회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 정도로 성인이 되어서는 엄청 많은 일을 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까지 교회 활동에 열심히 했을까 억울할 정도로 나의 젊은 시절의 많은 시간을 교회에 할애했다. 한참 연애하고 즐겨야 할 그 시간도 나는 다 바쳤다.
  
 뭐 물론 나의 신앙이기도 했고, 나름의 가치관 정립 이후 한 것이기도 하지만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했나 모르겠다. 지금도 뭔가 조금 아까운 느낌. 다 지나간 시간들이지만 말이다. 주님을 위하여 했다고, 그것이 다 나에게 귀한 상급이 될 것이라 자위하지만, 뭐 실제로도 넘치는 은혜를 입었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순간이 많았다고 신앙의 고백은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도 좀 더 놀아볼 걸. 좀 빠져보고 반항도 해볼 걸 하면서 가끔씩 아쉬운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도 교회 일을 하면서 나 스스로 많이 성장한 것은 틀림이 없다. ppt와 동영상 편집을 독학으로 씨름하면서 ppt 능력도 향상되고, 반주야 뭐 월등히 잘하게 되었고, 앞에 나가서 진행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발표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었고, 여러 가지 기획하고 업무 처리하는 능력들이 알게 모르게 많이 축적되었을 것이다.

 무튼 그런 많은 일들을 하면서 난 다른 사람들의 ‘찬양’을 많이 받곤 했다. ‘대단하다’, ‘멋지다’, ‘어떻게 그런 일까지 하느냐’, ‘수고가 많다’, ‘빛이 난다’, 등등등 어린 시절부터 오래도록 나를 봐온 성도님들은 나에게 많은 칭찬의 물을 주었다. 나를 공격하고 밟아버리는 성도들도 있었지만 또 이렇게 나를 우쭈쭈해줘서 커지고 자라나게 해주던 분들도 있었기에 내가 그나마 버텼던 것 같다. 그것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더 소처럼 일하게 만든 일종의 무의식적 ‘가스라이팅’이었을지는 몰라도 그래도 나의 수고를 알아주는 것은 가히 기쁘고 감사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내 부모님은 나에게 그렇게 큰 칭찬을 해주지 못했다. 이건 목회자 자녀의 입장보다는 그저 부모 자식 간의 소통 문제, 우리 부모의 표현하지 못하는 능력 문제이긴 하지만 교회에서 많이 일어났으니 목사 딸 문제로 여기고 쓴다.


 그렇게 일을 하고 수고하면 무엇하나. 우리 엄마 아빠는 나에게 그 흔한 ‘잘했다’, ‘대단하다’, ‘수고했다’를 안 해주는데. 그들에겐 ‘주님’의 일이니 인간적인 칭찬과 격려는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우월감에 젖게 만든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사실 대놓고 물어본 적이 없었지만 난 그저 ‘잘했다’, ‘수고했다’ 그 한마디가 그리웠고 목말랐고 기다렸는데... 다른 누구의 말이 아닌 내 부모가 나에게 해주길 바랐는데 그렇게 듣지 못하는 것에 항상 서운한 마음이 앞섰던 것 같다.

 그냥 내가 하는 건 ‘당연’했고 ‘마땅’한 것이었다. 정말 힘든 때도 많았고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도 너무나 많았다. 내가 왜 여기서 이걸 이렇게 다 하고 있어야 하나 고민했던 때가 수도 없다. 얼굴이 썩어들어가고 감정이 피폐해지던 때도 많다. 자신의 직업을 선택한 부모(특히 아빠. 엄마의 삶도 수백 페이지의 책이겠지만)와 달리 나는 그냥 ‘목사 딸’로 태어났기 때문에 당연하게 이 짐을 짊어지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뭔가 불공평하고 억울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모의 직장이고 부모의 직업이지 그게 왜 나에게까지 와야 하는지 모르겠고 신앙이란 이름하에 난 왜 그렇게 많은 교회 일을 당연하게 해야 하는지 머리로는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머리로도 이해가 안되는데 마음이 따라줄 리가 없다. 그냥 정말 ‘주의 일이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말로 계속, 견디고 버텨내야 했다. 물론 즐겁고 기쁘고 가슴 뛰게 할 때도 있었다. 보람도 느끼고 영혼들을 위한 일이니 감사한 일도 많았다.


 하지만 난 나약한 인간인지라 자주 쓰러지고 넘어지고 슬퍼지고 우울해지고 힘들어졌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오히려 아빠는 나를 격려하고 위로하기보다는 ‘기쁘게 해야 한다’, ‘주님께 맞기 전에 돌아오라’는 강압과 협박의 메시지를 던졌던 것 같다.  

 내가 왜 그렇게 하기 싫은지, 왜 그렇게 힘든지, 무엇이 날 그렇게 외롭게 만드는지 한 번이라도 물어봐 줬다면 더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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