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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존 Jul 20. 2023

엄마, 내가 이거 왜 한다고 했지?

빛나는 것보다 더 유익한 것


“….

이것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야

이것들의 위험한 공통점은

모두 ‘외부의 관점’이며

그것에 의해 ‘내 가치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그것이 애초에 ‘내가 원하는 것’ 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배우라는 직업은 특히

최전선에 노출되고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직업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스스로 눈을 멀고 속기가 쉽기에 더 조심해야 한다.

(2023.01.03. 나의 메모장에서)“





대단해, 축하해, 멋지다!


배우활동을 하면서 자주 접하게 되는 말들이다.


처음엔 내가 정말 대단하고 멋져서 이런 말들을 듣는다고 여겼고, 기분이 꽤나 좋았던 것 같다.


물론

누구나의 것이 그렇듯, 나의 노력과 결과가 귀하고 멋지고 대단한 것은 변치 않을 사실이지만


세상에는 똑같은 가치를 가졌어도 ‘드러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들이 있다는 것을 한참 후에 배우고 나서야, 그 모든 찬사가 ‘나’에 대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 온갖 멋지고 가치 있는 일들, 온갖 대단한 사람들 속에서 다만 내가 하는 일이 눈에 잘 띄는 ‘드러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 특혜를 누리고 있는 것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말이다.





거품과 불안을 위한 것인가


특히 배우 활동을 하면서 이룬 크고 작은 성과를 SNS에 올리면, 친절하게도 꽤 많은 사람들이 하트를 마구마구 눌러준다.


‘공중파’를 탔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아주는 무대’에 섰기 때문에. 그들은 박수를 쳐준다.


그러면 나는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오르고 두 뺨이 상기돼서 보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뿌듯하다는 감정을 느끼며 어떻게 이것을 다시 반복해 볼까 궁리한다.


그런데 사실 사람들은, 내가 한 연기가 그들에게 가치 있는 걸 줘서라기보다는 눈에 띄고 빛나니까 일단 박수를 보내주는 경우가 많다.


결과가 있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박수이기도하겠거니와, 그것이 수면에 ‘떠올랐기‘ 때문에, ‘드러났기’ 때문에, 눈에 ‘잘 보이기’ 때문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게다가 그때 또 누군가는 속으로 배앓이를 하며 괴로움을 겪는다.


무엇이든 좋아 보이는 것을 좋아하고, 축복해 주는 사람들의 태도는 정말 감사한 것이다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박수와 좋아요를 받을수록 묘하게 마음이 히스테릭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해낸 것이 정말 이만큼의 인정을 받을 만한 걸까?’


‘난 사실 별게 아닌데, 내가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거면 어떡하지?’


마치 나라는 인간에게 낀 거품이 자꾸만 커져서 나를 위협하는 기분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의 불안을 거듭거듭 느끼면서 끝내 직면해야만 했던 질문은,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가 결국 이 하트와 박수들을 받기 위해서였나?”


즉,

“나는 정말로 무엇을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인가?”

였다.





일종의 패턴, 싸이클


다소 비관적으로 보자면 당시 내 배우활동 양상이 아래의 패턴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건 부정하기 어려웠다.


1.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음 - 두려움을 느낌

2. 어떻게든 일을 얻음.

3.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애를 씀.

4. 어떻게든 결과를 냄.


5. 드러남.

6. 그것을 공식적으로 자랑하고 박수받음

-그러면서 누군가에게는 ‘좋은 자극’을

- 누군가에겐 ‘질투와 괴로움’을 줌


7. 끝 - 1번부터 반복

- 혹은 공허함을 느끼기

- 혹은 그걸 채우거나 피하려고 엉뚱한 곳을 헤매기

- 끝.


누군가가 이러한 싸이클을 만들어내는 게 애초의 목표였다면 그 사람에게는 이것이 곧 성공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어느 한 때는 내가 그것을 원한다고 착각했을지는 몰라도 진짜 내가 원했던 건 그게 아니었다.





칭찬을 해줘도 난리니.


이런 고민들과 불길한 직감이 반복되어도 이렇다 할 이해에도 해답에도 가닿지 못하자, ‘나는 왜 이렇게 불만이 많고 생각이 많을까?’ 라며 자책하는 게 익숙해질 어느 시점에,


삶이 보내는 신호를 정말 더 이상은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딱 붙잡고 앉아서 물었다.


‘그래, 지금 뭔가 이상하지?’

‘잘했고 인정받는데 기분이 안 좋지?’

‘왜 그런 거 같아?’

‘그냥 네가 감사를 모르는 삐딱한 인간이라서?’  


(뭐, 물론 그런 면도 없진 않았을 것 같다만서도)


그렇게 나 자신에게, 그리고 옆에 있던 엄마에게 물어나가기 시작했다.





‘엄마, 나 이거 왜 한다고 했지?’


‘기억나?‘

‘대체 내가 애초에 뭘 원했길래, 뭐가 좋다고 생각되었길래 뛰어들었던 거지?’


그 시점으로부터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그때가 처음 내가 ‘배우의 길을 가보겠다’고 결정한 때였으니까.


흥미롭게도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숨 가쁘게 쫓고 있는 그 ‘빛나는 것들’을 꿈꾼 적이 없었다. ‘인정받는 것‘도 ’스타가 되는 것’도 ‘대단한 상을 받는 것’도 내가 이 길을 가보겠다고 결정한 이유가 아니었다.


처음의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배우의 길을 걸어보는 것’, 그것을 원했다. 참 이상적이고 참 우습기도 하지만 정말 그랬다.


나는, 인간이 타고난 무언가 - ‘몸’이라던지 ‘정신’이라던지 ‘목소리‘, ’눈빛‘, ’마음‘, ’호흡‘ 등등… - 들을 가지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배우들이 ‘너무나 경이로웠‘었다.


대사도 움직임도 음악도 감정도 생각도 눈에 보이지가 않는데, 그게 마치 정말 존재하는 것처럼 ‘공유’가 된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흥미롭고 또 특별하게 느껴졌었다.


쉽게 말해, 그들이 하는 일이 마치 ‘마법’ 같아 보였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그런 ‘마법사’가 되는 건지, 뭘 먹고 뭘 하고 뭔 생각을 하고 살면 그렇게 되는 건지, 그런 ‘마법’을 부릴 수 있게 되면 대체 어떤 기분일지..


그게 너무나 궁금해서 죽기 전에 해보지 않으면 가장 후회할 일중 하나로 손에 꼽을 정도였던 것이다.




The Original Why


 무슨 일을 한들 인정받고 칭찬받으면 안 좋을게 무엇이 있겠냐만, 그 자체가 잘못됐다거나 불만이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애초에 정말 목적으로 두었던 것들이 아닌 ‘빛나는 것들’ 혹은 ‘다른 사람들이 쫓아가는 것들’에 현혹되고 중독되어 끌려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감각이 자꾸만 내게 찾아왔던 것이었다.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동기와 목적으로 삼으면서 본래 목적을 잊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나 스스로 갈등을 겪고 있었던 것이었다.


긴 말이 필요 없었다.

내가 다시 무엇을 향해 가야 할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일의 근본을 다시 한번 이해하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해내고 나니, 한편으로 참 안심이 되었다.


앞으로도 받게 되는 칭찬과 겪게 되는 빛나는 것들은 덤으로, 신나게, 감사히 받고 즐기되, 나의 track을 따라 나아갈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오랜만에 다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똑똑한 우리들도 항로를 열심히 쫓다 보면 빛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 진짜 나의 ‘track’에서 벗어나 기준을 잃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의 Origin을 되새기는 것, 이것이 앞으로도 나에게 부동의 나침반이 되어주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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