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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존 Jul 18. 2023

계절마다 해야 할 일

나는야 씨 뿌리는 농부

“안되면 되게 하기.

안되는 걸 되게 하는 사람.

받을 수 있는 뭐든 도움받기.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도구 쓰기.

(2021.11.09 나의 메모장에서)“




”출연영상 보내주세요 “


이제 시작 좀 해보려고 하는데 ‘경력’을 작성하여 제출하라니, 아직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출연영상’을 보내달라니.


무엇을 어찌하라는 건지 ‘벙-’ 해지는 시점은 사실 배우가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무엇을 하든 찾아온다.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거니와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그 순간이 조금 슬픈 건, 그것이 주로 ‘시작하자마자’ 찾아오는 손님이라는 사실.





맨땅도 갈면 기름진 땅이 된다는 믿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맨땅에 헤딩’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믿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면’, ‘된다’는 생각.


‘0’ 에다가 ‘1’을 더했는데 어찌 그것이 ‘0’으로만 계속 버티겠는가. 하는 이유 있는 긍정.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는, ‘무엇이든지’ 하는 것 그 자체가 우리를 ‘get going’, 즉 앞으로 나아가게 하게 해 준다는 것.


내가 뿌린 씨앗들이 하나하나 반드시 유효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씨앗을 뿌리는 행위와 노력 자체’가 분명히 어딘가에서 꽃을 피우는 ‘씨앗이 된다’는 것에 대한 믿음 말이다.


허무한가? 하지만 정말로 무언가를 내가 하기만 하면, 되어진다는 걸,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빛을 쬐이면 싹이 튼다는 것을 ‘아는 것’은, 정말로 그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누군가가 무언가에 비장한 각오로 임할 때 ‘나 죽었다’ 생각하듯, 나 또한 ‘나는 농부다’ 되뇌이며 막연히 씨앗을 뿌렸던 시기가 있었다.


그것이 ‘배우’로서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내게는

‘검색’이었고,

‘발품’이었고,

‘배움’이었고,

‘관람, 시청, 독서’

(를 아주 많이 했다고 자부할 순 없지만서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였고,

‘프로필’이었고,

‘질문’이었고,

‘오디션 지원’이었다.


대책 없이 그냥,

본받고 싶은 ‘선배들을 만나기’였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변에 ‘알리기’였다.


내가 어떤 땅에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지, 앞으로 경작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조차도 어렴풋하더라도 ‘그저‘ 그렇게 했더랬다.


계산하지 않았다.


백개의 씨앗을 뿌렸다고 백개의 열매를 기대하지 않았다. 동쪽에 씨앗을 심었지만 서쪽에서 새싹이 솟을 수 있다는 사실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Input과 Output의 상관관계가 나의 조그마한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그저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것이 분명 나를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도와주리라 믿었다.


Do whatever it takes,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이 현실로 일어나는 데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진심’으로 그렇게 했다.





첫 새싹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어디에선가

새싹이 솟아났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내가 뿌린 씨앗이 어디론가 날아가 뜻밖의 꽃이 되어 내게 돌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전화’가 되어 돌아왔고,

‘카톡’이 되어 돌아왔고,

정보를 분간하는 나의 ‘안목‘이 자라났고, 어떤 기회를 만났을 때 나를 떠올려주는 ‘동료와 선배들’이 생겨났다.


그런 소식이 들려오는 빈도가 잦아졌을 때, 나는 씨앗 뿌리기를 잠시 멈추는 대신, 막 자라나기 시작한 것들에 양분을 주며 가꾸어야 할 때가 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첫 연기영상’이라는 작지만 매우 소중한 열매도 수확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또 다른 열매를 맺게 하는 새로운 씨앗이라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알았을까?


지속적으로 뿌려진 씨앗들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지속적으로 내게 돌아왔다.


아무도 안 볼지라도 씨앗은 뿌리겠다는 마음으로 한 방송국에다가 냈었던 배우 프로필을, 한 소속사 팀장님이 업무차 방문했다가 우연히 보시고 내게 연락해 미팅을 제안한 일은 그 여러 가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호기심을 따라 다음으로, 또 다음으로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나에게 ‘연기’라던지 ‘연극’이라던지 ‘뮤지컬’이라던지 하는 말들은 나를 정의하거나 내 인생을 차지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그저 ‘이토록 궁금한 세상’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그 일말의 호기심만 가지고 말 그대로 ‘별생각 없이’ 학교 밖 체험 프로그램에서 ‘극단’에 학생인턴으로 가는 것을 선택했고, 그곳에서 만난 감사한 인연으로 나 스스로 ‘배우’라고 정의하기도 전에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연결되어 그때 처음 정식으로 무대에 서게 되었다.


얼마 시간이 흘러 그때의 인연이 또다시 이어져 아는 것 하나 없었던 소속사의 세계도 경험할 수 있었고, 그것은 또 그다음으로, 다음으로, 이어졌더랬다.


물론 겨울처럼 거칠고 차가운 계절도 있었지만, 분명한 건 그 씨앗 하나하나가 훗날의, 즉 지금의 내가 또다시 한 걸음 나아가는 데에 큰 밑거름 되어주었고 되어주고 있다는 것.


만약, 내가 이 모든 것을 ’알고 계획하고 통제하려고’ 했다면, 아마 머릿속에서 모든 게 복잡하게 얽히며 결국은 무시무시하게 커져버려 여기까지 오기는커녕,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했을는지도 모르겠다.






‘계단 오르기’를 떠올리는 것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하는 일이다.


지금 해야 하는 일은 알겠으나 그다음이 도저히 보이지 않다는 이유로 그 첫걸음을 떼는 것조차 두려워질 때, 한 계단 오르기 전에는 꼭대기에서 어떤 땅을 밟고 어떤 경치를 맞이하게 될지 도무지 알 수도 볼 수가 없어 두려울 때,


‘일단 한 계단’을 오르고 나면, 시작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시야에 들어오게 되어있다는 것을 떠올린다. 일단 한 계단 오르고 나면, 오르기 전엔 알지 못하기에 고려할 수 없었던 것들을 고려할 수 있게 되고, 꿈꾸지 못했던 것들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일단’이라는 용기는, ‘열 걸음’이라는 먼 길을,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이라는 해봄직한 도전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더라.






돌아온 계절


재밌는 건, 이 글을 쓰는 지금 어쩌면 나는 또다시 씨앗을 뿌려야 하는 계절을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번엔 땅부터 다시 갈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배우라는 밭을 가꾸는 일은 앞으로 계속해나가겠지만, 일련의 계절들이 씨앗부터 자라 그 나름의 열매들을 맺었으니 이제는 잠시 고요해지는 시기가 왔는지도 모른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왜 열매가 더 열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막 열매를 모두 수확했다는 것은 거짓말처럼 잊어버리고 말이다.

 

봄이 지나면 새싹도 줄기도 열매도 꽃도 만나게 되지만, 또다시 모진 땅은 오기마련이고, 이렇게 또다시 씨앗을 뿌리는 시기가 오기 마련이다. 땅을 대하는 농부의 삶이 그렇듯 우리 삶에도 씨앗을 뿌리는 시기가 한 번만 오는 게 아니니까, 일 년 농사는 한 번 씨앗을 뿌리지만 우리 삶은 일 년 농사가 아니니까.


앞으로도 스스로의 삶의 계절을

잘 알아차려야겠다.


그러지 않고서는 왜 여름이 왔는데 열매가 열리지 않느냐며, 씨앗을 뿌려야 하는 봄이 지났는지도 모른 체 쓸쓸하게 가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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