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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간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by Grey Hoo

정신을 차려보면 며칠이 사라져 있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갑니다. 멍하니 있다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며칠 동안 뭘 했지?'라는 허무함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분명 웃고, 즐기고, 무언가를 하긴 했는데 기억에 남는 알맹이가 없는 기분. 그래서 저 같은 사람에게는 '기록'이 중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의미를 새기는 최소한의 노력이니까요.


균열이 생긴 일상의 리듬

나름의 중심을 잡고 내 시간을 잘 꾸려가고 싶지만, 삶은 종종 예기치 않은 파도를 보내와 나를 갈대처럼 흔듭니다.

얼마 전에는 멀리 떨어져 지내던 짝꿍이 2주간 휴가를 왔습니다.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행복했지만, 저의 오랜 일상 리듬은 완전히 깨졌습니다. 그렇게 깨진 리듬을 다시 되찾는 데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고, 마음 한편이 힘겨웠습니다.

그 후에는 몸이 아파 4일을 꼼짝없이 앓아누웠습니다. 고통 속에서 시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녹아내렸습니다. 연휴에는 부모님 댁에 방문해 맛있는 외식을 하고, 시끌벅적한 축제에서 유명 가수의 공연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핵심(Core)이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텅 빈 시간을 견뎌야 하는 곳, 사무실

이번 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원한 사무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버티고 있으면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옵니다. 물론 평소에는 밤낮없이 바쁘고 여기저기 치이는 이 일의 강도와 스트레스는 정말 대단하지만, 지금처럼 일이 없는 시기에는 그저 '빈둥거리는 것'이 일이 됩니다. (길지않은 이 시기가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고민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남의 눈이 있어 대놓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으니, 텅 빈 시간을 견디는 것 또한 고역입니다.

시간이 금인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틈틈이 글을 다듬어 보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정신없이 바쁘고 싶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내 시간을 좀 더 생산적이고 즐거운 무언가로 채우고 싶다는 욕망에 가깝습니다. 여유를 즐기고, 훌쩍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사랑하지만, 의미 없이 오지 않는 메일함을 바라보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나에게 남는 시간은 얼마인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18년이나 해온 이 일. 이제는 더 이상 큰 의미를 찾기 어렵습니다. 꾸준한 월급 외에 이 일이 나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럴 바에야 차라리 돈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시간을 자유롭게 쓰거나, 혹은 그 시간에 더 몰입해서 더 큰돈을 버는 게 낫지 않을까. 어쩌면 돈을 떠나, 내 시간을 온전히 나에게 써보는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까.

하루 24시간 중 8~9시간은 사무실에, 2시간 이상은 출퇴근길에 묶여 있습니다. 7~8시간을 자고, 2시간 동안 밥을 먹고 최소한의 집안일을 하고 나면, 나에게 남는 시간은 고작 서너 시간 남짓. 이 시간만으로는 나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나의 시간을 기다리며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짐합니다. 회사에서는 해야 할 일을 잘 해내되, 남는 에너지는 온전히 나를 위해 쓰겠다고. 내 글을 한 줄이라도 더 다듬어보겠다고 말입니다.

내년 1~2월, 그토록 원하던 안식년을 시작하면 얼마나 막막할까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온전히 나의 의지대로 채워갈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뜁니다. 막막함보다는 기대감으로, 다가올 나의 시간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