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만에 정주행한 시리즈와, 잠결에 떠오른 단어 하나
일요일 오후였다.
별다른 계획 없이 집에 있던 나는 무심코 리모컨을 집어 OTT 플랫폼을 둘러보다가, 요즘 종종 이름이 들려오던 시리즈 하나를 눌렀다. 아리스 인 보더랜드.
‘일본식 데스게임이겠거니.’
잔인한 게임, 처절한 생존,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우정과 배신.
첫인상은 익숙했다. 캐릭터들이 던지는 교훈적인 대사들은 다소 비장했고, 전개 또한 일본 콘텐츠 특유의 감성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저 시간을 때우자는 마음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을 뿐이었다.
하지만 한 화, 두 화가 이어질수록 나는 점점 자세를 고쳐 앉고 있었다.
이야기는 알려줄 듯 알려주지 않고, 싸움의 끝이 어디인지, 도대체 이 싸움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끝없이 묻고 또 묻게 했다.
그날 밤, 결국 새벽 4시까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밤을 꼴딱 새우고서야 겨우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월요일 퇴근 후 나는 다시 리모컨을 잡았다.
남은 화들을 몰아보며 결국 자정을 넘겨 완결을 보게 되었을 때, 마침내 비밀의 실마리가 풀렸다.
수많은 시나리오 끝에 드러난 현실—모든 처절한 사투가 사실은 현실의 단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벌어진 사건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믿는 순간, 화면을 가득 채운 조커 카드 한 장.
그것은 단순한 반전이 아니었다.
내가 ‘클리셰’라고 치부했던 이야기 전체를 송두리째 다시 보게 만드는 묵직한 질문이었다.
드라마는 막을 내렸지만, 내 안에서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이 싸움은 어디를 향하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내 삶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
새벽, 얕은 잠에서 깨어날 때 머릿속에 선명하게 맴도는 단어 하나가 있었다.
영어였다.
“Cooperate.”
왜 하필 이 단어였을까.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극 중 인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 했다.
믿음과 배신 사이에서 끊임없이 협력의 가치를 시험받았다.
하지만 내가 떠올린 ‘협력’은 단순히 타인과의 협력을 뜻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 자신과의 협력, 그리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삶의 거대한 흐름과의 협력에 가까웠다.
어젯밤 불안으로 두근거리던 심장을 억지로 잠재우려 하기보다,
그 두근거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천천히 호흡을 고르려 했던 일.
처음에는 비평하듯 냉소적으로 한 발 물러서서 보려 했지만, 끝내 작품이 던지는 충격과 질문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 모든 것이 나와 내 마음, 나와 세상 사이의 협력이었다.
생각해 보면 삶은 애초에 협력 없이는 버틸 수 없는 게임일지도 모른다.
나와 내 감정, 나와 타인, 나와 세계가 서로 손을 맞잡고 흘러가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어떤 서사.
아리스 인 보더랜드는 그 사실을 기묘하고도 필연적으로 내게 일깨워 주었다.
무심코 시작한 주말의 정주행이 내게 남긴 것은 단순한 재미가 아니었다.
조커 카드가 던져준 묵직한 질문, 그리고 잠결에 떠오른 단어 하나.
Cooperate.
아직 이 단어가 내게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 안의 벽을 천천히 바라보며,
그 벽과도 협력할 방법을 찾아가고 싶다.
내가 앞으로 맞닥뜨릴 이 삶이라는 진짜 게임을 어떻게 플레이할지에 대한,
서툴지만 가장 진솔한 나만의 대답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