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 엄마랑 거리를 두려고.
친구의 롤 모델은 정치인 면모를 갖고 은퇴 없이 부동산 투자를 하시는 친정엄마였다. 그런데 이제 독립하려 한다. 어릴 적부터 제멋대로인 오빠 때문에 속상한 엄마를 위해 숨 쉴 곳을 만들어줬던 딸이었다. 나는 달라야지 하는 마음으로 혼자 꿀꺽꿀꺽 해내며 입시, 취직, 결혼, 육아 다 해내는 친구였다. 심지어 부동산 투자 하는 엄마의 꿈인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땄다. 그토록 힘들고 나쁜 운에. 공인중개사가 된 친구는 친정엄마의 비서가 되어 모든 서류처리며 복잡한 일들을 해결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고맙다는 말은 기대도 못 한다. 친구가 원하는 것은 딱 한 가지 엄마의 인정인데 친정엄마는 딸을 인정할 마음이 없다.
친구와 내 나이 마흔셋.
사실 독립하기에 너무 늦었다. 친구와 친정엄마는 이미 모든 생활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어서 관계를 정리하려면 엄마의 모진 서운함을 이겨내야 하고 주변 친척들의 손가락질도 머릿속에 떠올라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몇 년을 반복했다. 눈떠보면 제자리.
나도 이제 남 신경 그만 쓰고 싶어.
친구는 울고 있다. 그래. 우리의 네 번째 열 살은 생각보다 반짝이지 못했다.
사주는 10년 단위로 운의 흐름이 바뀐다. 나는 그것을 게임에 비유하곤 하는데, 마치 슈퍼마리오 게임에서 다음단계로 올라가는 느낌이다. 게임이 바뀌면 버튼 조작 방식도 바뀐다. 분명 이전 스테이지에서는 " △ "를 누르면 주먹이 나갔는데 이번에는 안 나간다. 갑자기 앞으로 달리다 넘어지고 버튼도 안 먹힌다. 보통 사람들이 운이 바뀌면 이런 느낌이다. 모든 룰이 바뀌는 것이다. 문제는 바뀐 줄 모르고 계속해서 잘되던 버튼이 왜 안되는지 답답해하며 같은 걸 눌러댄다. 그러다 5년 정도 지나면 넘어지고 깨지며 바뀐 룰을 터득해 내고 남은 5년은 익숙해져 간다. 야속하게도 이제 겨우 편해졌는데 새로운 스테이지 10년이라 다시 넘어지고 깨지며 룰을 터득한다. 그렇게 우리는 10살을 여러 번 살아간다.
4번째 열 살의 게임 룰은 무엇일까.
'불혹'이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 정신 차리는 나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남의 말을 듣지 않아야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30대 때 우리는 세상을 향해 꿈을 펼치고, 삶의 방향을 잡는다. 40대가 되면 그 방향을 바라보고 유혹되고 흔들림 없이 달려야 하는 것이다. 40대는 내 힘으로 밀고 나가야 하기에 남들을 향했던 시선이 비로소 나의 능력과 마음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의 네 번째 열 살 사춘기는 이렇게 찾아온다.
십 대 사춘기에 세상 속 내 존재를 깨닫는다면 40대 사춘기는 지금까지 살아온 중간 성적표를 받는 상황이다. 슬프게도 성적표가 실망스럽거나 생각했던 방향이 아니면 큰 방황이 온다. 첫 번째 사춘기보다 더 묵직한 방황이지만, 차이가 있다면 남에게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더 아프다.
친구는 40이 넘어 이제야 바라본 자신이 도대체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30대에 열심히는 살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든 거다. 어디까지가 나의 뜻이고 엄마의 뜻인지 구분이 안 간다고 했다. 자신이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것이 엄마의 취향은 아닌지 혼란스러워했다. 아직 방향을 찾지 못했는데 이미 다음 게임으로 넘어온 것이다. 이제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방향이 맞는지 알지 못한 채 가야 하니 마음 가득 무섭다.
친구는 이사를 가기로 했다. 우선 엄마와 떨어진 곳으로 가면 좀 나을 것 같다며 멀리 떠나기로 했다. 나는 친구의 독립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30대에 못한 밀린 숙제까지 해 내려면 몇 배는 더 힘들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더 못할 것을 안다.
우리는 매번 열 살을 다시 살고 있지만 그 열 살이 말해주는 인생의 뜻을 깨닫기도 전에 다음 열 살을 만나는 것 같다. 스무 살에 만난 친구와 네 번째 열 살을 살아가며 함께 다독인다. 그때 꿈꿨던 많은 것들이 내 성적표에 적혀있지 않지만 다섯 번째 열 살을 잘 살아내기 위해 이번에는 당하지 않고 내가 선택할 것이다. 더욱 적극적으로 넘어지고 깨짐을.
알고 넘어지면
몸은 아파도 마음은 아프지 않을 테니
사진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