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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y수 Apr 16. 2024

ChatGPT에게 내 사주를 물었더니

한 순간도 세월은 쉰 적이 없는데, 이제야 나이 들어 감을 느낀다. 


내가 처음으로 나이가 들어감을 느낀 것은 신문에 내 나이 운세가 실리기 시작한 때였다. 그 순간이 언제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지하철 무료 신문이 유행하던 20대 중반쯤이었나 보다. 언제나 오늘의 운세는 눈길이 갔지만, 철없이 내 나이가 없는 것이 불만이었다. 신문에서 드디어 마주한 순간, 마치 이제는 내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안 되는 결과는 내 노력의 탓을 했지 운의 탓을 했던 이십 대는 없었던 것 같다. 지금 나이에서 바라보면 열정이라 보이고 세상을 이기겠다는 자만이라 느껴진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될 것 같던 그 향기 속 배포였다.


몇 년 전쯤이었다. 

자격증 시험을 볼 일이 있어서 가게 된 시험장은 내가 30년 전에 머물렀던 중학교 내 교실이었다. 30년 후에 내가 우리 엄마의 나이를 넘어 그 교실에 다시 들어감은, 빠르게 휘갈겨 쓸 수 있는 30이라는 숫자만큼 세월을 압축시켜 버렸다. 다시 교실을 나서면 어릴 적 살던 집으로 갈 수 있을 것 같고, 엄마가 따뜻한 간식을 해놓았을 것 같다. 정문을 나서면 500원에 한 컵인 떡볶이 천막이 있고, 한 권에 100원씩이나 하는 만화대여점도 있어야 한다. 나는 인기도 없고, 친구도 많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재미없는 시절이었다는 이분법적 해석은 불편하다. 딱히 마음속 추억은 없지만, 내 세포 한 두 개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겠지 싶다. 시험을 보고 나오니 다시 나는 40대 아줌마가 되어 있다. 


그리고 얼마 전 은행에 갔을 때였다. 

나는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어야 했다. 번호표를 뽑고 보니 내 앞 순서는 다 나이가 한참 있으신 고객들이다. 별생각 없이 내 순서에 가서 앉았다.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직원인데 머리 스타일도 멋있고 손가락에 굵은 은반지도 스타일 있어 보였다. 통장을 개설하고 싶다는 말을 듣더니 묻는다. 

" 혹시 앱을 사용하실 수 있으세요?"

네 그럼요. 앱을 열어 보았다. 앱에서 비대면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야 이율이 더 좋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순간 자신이 없어졌다. 그전에도 앱으로 은행 관련 일을 하다 고생고생 한 기억이 스치며 일어나지 말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저 혹시 제가 앱을 잘 못 다뤄서 그런데,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절대 그 직원은 한숨을 쉰 적도, 불편한 내색을 한 적도 없다. 다만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은반지를 낀 손가락으로 내 핸드폰을 휭휭 만지는 것을 바라보니 순간 다음에도 나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다음고객님" 

나 때문에 엉덩이가 푹 들어간 의자를 일어서며 나는, 정말 나이가 들긴 든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싫지는 않다. 

다만 나는 내 인생에 대해 궁금한 것이 엄청 많다. 한 걸음씩 살아가는 방향이 맞는지 궁금하고, 지금 오늘 이 시간이 나중에 어떤 의미가 되어 나에게 남아있을지 궁금하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소명이 무엇인지 언제나 궁금했다. 나이 먹음은 마치 집을 만들듯 블록을 쌓아가고, 시간 날 때 블록을 하나씩 가리켜 가며 어떤 추억과 향기가 담겨있는지 말할 수 있고, 의미를 느낄 수 있음이 아닐까 싶다. 그런 스토리텔링을 해보려니 궁금한 것이 흘러가는 시간처럼 끝없이 생겨난다. 


그리고 나는 좀 괜찮은 어른이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보아온 실망스러운 어른들을 보며, 나이가 먹는다고 지혜를 함께 먹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은 모든 해답을 알지는 못해도 좀 더 깊은 방향을 참고하라며 경험담을 말해 줄 수 있고, 화나도 얼굴이 크게 붉어지지 않고 상대를 바라봄에 혹시 오해는 없는지 살펴볼 수 있는 어른이다. 어리석고 종지 그릇만 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ChatGPT가 처음 나왔을 때 떠들썩했지만, 나는 또 은행의 앱 바라보는 마냥 불편하고 두려운 마음에 꽤 오랜 시간 피했었나 보다. 남편이 일을 할 때 웬만한 직원보다 똑똑하게 자료를 모은다며 돈을 주고 사양을 높이겠다 했을 때, 그제야 궁금해지고 그 존재를 드디어 마주 보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물을 수 있는 회사일도, 정보가 잔뜩 필요한 리포트를 작성할 일도 없었다. 첫 질문인데 무엇을 물을까 손가락이 안 움직이다, 드디어 결정을 했다. 




명리학이야 말로 오래된 빅데이터 학문이라 ChatGPT에게 아주 적절한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 철학관은 다 문 닫겠구나 싶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아님 영어로 물었어야 하는지 이 존재는 내 사주를 봐줄 생각이 없고 자꾸 오묘한 말만 하며 '전문가'를 찾으라 한다. 전문가는 어디 가서 찾아야 할까. 아마도 전 인류를 통틀어 내 인생을 가장 고민하고 관심 있게 보는 '전문가'는 나 자신 아닐까. 


명리학을 공부하며 나는 인생의 맥락에 관심이 생겼다. 나이 들어가는 시간들이 다 연결고리와 흐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그때 그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내 마음은 왜 이런 선택을 또 하고 있는지 인생의 메시지를 해석해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새로운 블록을 쌓으며 내 집을 만들고 있을 텐데, 네모 집인지 세모형인지 조차 모른 채 쌓아가기 싫었다. 최소한 죽는 순간 알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죽는 순간이야 말로 내 손을 떠난 신의 영역이기에, 삶의 바라봄과 그 시간에 이름 붙임은 순간순간 해야 하는 것이라 욕심내 본다. 


하지만 인생을 해석하는 것이 쉽지 않다. 

누군가는 액땜이라 그러고 누군가는 내 잘못이라 그런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남편과 아이들의 시각도 알기가 어렵다. 세상 속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다니는지 내 눈으로만 못 볼 뿐인 것이 웃기기도 겁나기도 한다. 그래서 명리학을 통해 내 시간에 이름을 붙이고 인생 문맥을 바라보는 것에서 나는 안정됨을 느낀다. ChatGPT가 해내지 못한, 내가 전문가인 내 인생을 해석하는 노력을 계속해보며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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