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 간장을 2/3컵 넣었어야 하는데 2컵을 넣었어요.
5학년 아들의 취미는 요리다.
어떤 계기로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언뜻 생각나는 것이, 인기 있는 남자의 조건 중에 하나가 요리 잘하는 남자라는 기사를 봐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어머님의 아들인 남편은 요리를 전혀 안 하고, 나의 아들은 요리 실력이 점점 늘고 있다.
아들이 도전했던 요리는 처음에 스팸 무스비를 시작으로 두부 강정, 스테이크, 수플레, 김밥 등이다. 아이가 사용하기에 가스불이 걱정되어 덕분에 인덕션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번에는 메추리알 장조림에 도전하였던 것이다. 나는 백종원 님의 간단하고 달달한 레시피를 좋아하지만, 아들은 유툽에 나온 것 중 초초 강력히 맛있다는 목소리 내레이션에 끌렸는지, 재료도 좀 생소한 레시피를 선택하였다.
그런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바로 터진 것이다. 간장을 두 배 넘게 넣어버린 것이다. 이미 다른 양념들을 넣고 마지막에 넣은 간장이라, 다 버리고 다시 하던지, 물 부어가며 맛 조절을 할지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 내 예상대로 아들은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서는 안 하겠다고 하였다.
나 그냥 안 할래요.
처음부터 모든 스텝이 마음에 딱 들게 진행되지 않으면 지레 포기해 버리는 아들이다. 아니, 중간에 변수가 있더라도 결과가 좋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진행하는 것 같다. 그런데 실패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시도했던 도전까지 포기한다. 그런데 조금 더 어릴 때는 이런 성향의 아이가 엄마에게 뿌듯함을 주기도 한다. 연필을 쥘 때도 알려준 대로, 숫자를 쓸 때도 본인 마음에 들 때까지, 선생님이 검사하시는 필기노트도 생각보다 깔끔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완벽주의자의 장점이자 아픔인 것이다. 난 아들에게 삶을 힘들게 하는 DNA를 물려준 것 같아서, 이런 순간마다 내 잘 못인 마냥 할 말을 잃는다. 정확히는 40년 넘게 살아온 나 조차도 뭐라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 아직도.
<<빠르게 실패하기>>
나를 위해서 탄생한 책 같은 느낌에, 도서관에 달려가 빌렸다. 대출 가능이 뜨는 것을 보면서 운명적이라 호들갑을 떨었다. 작가는 다양한 사례와 연구를 통해서 빠르게 실패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다이어트를 계획했는데 실패하고, 책을 읽기로 했는데 하다 말고, 영어 공부는 매년 계획에 들어가지만 매년 실패하는 그런 삶을 더 빠르게 실패하며 살게 해 주겠다는 말일까?
작가는 말한다.
실수한다고 죽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를 피하려는 삶이 당신을 구속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빠르게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패하는 것은 최대한 빨리 ' 실패를 없애 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이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읽다 보니 아들에게 읽어주면 좋을 예시들이 나와서 읽어 주기로 인덱스를 해놓았다. 저녁에 아이를 불러서 얘기했다.
" 엄마가 실패를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했었잖아? 그런데 그 말이 진짜 맞았었나 봐. 책이 떡하니 나와 있더라고."
엄마의 잔소리는 안 들려도, 책에 나온 글이라고 하니 조금 믿을 만 한가보다.
" 그런데 실패하고도 기분 좋게 지내라는 뜻이 아니라, 실수할 수 있지만 그 실수 때문에 인생이 망할 것 같고, 일이 엉망으로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을 바꾸라는 말 이래. 여기 몇 가지 읽어 줄게. "
훌륭한 뮤지션이 되고 싶다면,
먼저 엉망인 음악을 수없이 연주해 봐야 한다.
소설을 한 권 쓰고 싶다면,
먼저 하찮은 이야기들을 잔뜩 써 봐야 한다.
진정한 예술가가 되고 싶다면,
먼저 어설픈 예술을 창조해 봐야 한다.
에너지 효율이 좋고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최고의 상업 건축가가 되려면,
먼저 비효율적이고 거추장스러운 건축물을 디자인해 봐야 한다.
훌륭한 운동선수가 되려면,
우선 수많은 경기에서 패배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뭔가를 배울 수 있는 실수들을
가능하면 일찍 저질러 보는 것이 이득이다.
(윈스턴 처칠)
(출처 : 빠르게 실패하기 / 존크럼볼츠.라이언 바비노 / 스노우폭스북스 출판사)
엄마 똑똑해 보여요.
아들은 적당히 듣고 자리를 뜰 수 있는 말을 남기며 사라졌다. 얼마나 알아 들었을지는 모르지만, 이 아이 인생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뿐이다. 이런 실수와 실패의 두려움이 양육의 문제라 할 수 있겠지만, 큰 아이는 완전 다르다. 세상에 실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스타일이다. 모든 것이 그냥 하는 거고, 잘되면 좋고 안되면 그만이다. 세상 부러운 멘털이지만, 바라보는 내가 항상 마음이 편했던 것은 아니다.
사주의 영향도 있다. 딸과 달리, 나와 아들은 활동성을 나타내는 글자(식상)가 없다. 둘 다 생각만 가득하고 실행으로 옮기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반대로 이런 성향은 엉덩이 무겁게 무언가를 하는 것은 잘한다. 한번 움직이려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걸릴 뿐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요리를 하는 것이 좋다. 식상이라는 글자가 요리 같이 표현하고 활동하는 것도 포함되는 뜻이기에, 요리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이에게 없는 에너지를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책은 우리에게 몇 가지 실행을 해보라 말한다.
언젠가 살을 빼야 할 것을,
오늘 점심을 가볍게 먹어 보고.
언젠가 책을 한 권 써야 할 것을,
오늘 집에 가는 길에 몇 문장을 써보고.
언젠가 친구들과 다시 연락하고 지내야 할 것을,
지금 친구 한 명에게 문자를 보내보라 한다.
아들, 엄마는 지금이라도 실수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보려 해. 우리 실수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해보자.
실수의 진심은 성공이니까.
(출처 : 빠르게 실패하기 / 존크럼볼츠.라이언 바비노 / 스노우폭스북스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