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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Nov 02. 2023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글쓰기 공부

   https://brunch.co.kr/brunchbook/grhill01


   누구나 말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싶은 꿈이 있다. 대화 상대가 쉽게 이해하게 말을 해야 말을 잘하는 것이다. 글로 내 생각을 그대로 표현해서 읽는 사람이 공감하거나 이해하도록 쓰면, 잘 쓴 글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꿈을 실현하고 싶은 마음에 글쓰기를 다룬 책을 여러 권 읽는다. 읽을 때는 끄덕이지만 돌아서면 잊고, 습관을 고친 글을 쓰기가 쉽지 않다. 글을 잘 쓰는 이가 부러운 이유다. 독자는 김훈의 글이 좋아 닮고 싶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읽고 공부하는 까닭도 글 잘 쓰는 꿈을 꾸기 때문이다.     


   저자는 20여 년 동안 교정 교열 일을 하며 남의 문장을 다듬어 온 사람이다. 며칠 전 ‘철자법에 얽매이고 집착하는 사람은 폐쇄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이라는 외국 연구 결과를 인터넷 기사로 봤다. 독자도 철자법을 포함해 문장에 신경을 쓰는 편이라 폐쇄적 성향이란 말이 거슬렸으나 “어쩌란 말인가?”. 어색한 말이나 문장을 보면 바로잡고 싶은 것을. 오히려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는데. 기사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 스타일대로 살리라.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의 차례를 보면 헷갈린다. 생소한 편집이다. 책을 추려보면, ‘적의를 보이는 것들.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 내 문장은 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당하고 시키는 말로 뒤덮인 문장. 사랑할 때와 사랑을 할 때의 차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 문장은 손가락이 아니다. 과거형을 써야 하는지 안 써도 되는지. 시작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말을 이어 붙이는 접속사는 삿된 것이다. 문장 다듬기’가 소재로 구성되었다. 

   교정 전문가인 저자와 함인주라는 역자가 교정을 둘러싸고 여섯 번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글 사이에 12개 이메일을 두어 문법책에서 받는 지루함을 덜어준다. 이메일은 도입, 전개, 클라이맥스라는 기법을 따른 단편소설과 같다. 저자가 강연에서 메일을 주고받은 함인주라는 사람과 만나는데 역자의 미망인이다. (타이핑하다 보니 커피가 식었다)     


   적·의를 보이는 것들 : 접미사 ‘적’과 조사 ‘의’, 의존 명사 ‘것’과 접미사 ‘들’이 습관적으로 쓰이니 독자에게 조심하라고 조언한다. 

‘있다’는 움직일 땐 동사고 상태일 땐 형용사다. 문장 안에 쓰인 ‘있다’를 ‘있어라’로 바꾸어도 이상하지 않으면 동사, 이상하면 형용사로 생각하라. ‘있다’는 보조 동사로 쓰이기도 한다. ‘가고 있다’, ‘피어 있다’, ‘먹고 있다’, ‘깨어 있다’에 쓰인 경우다. 행위가 진행될 수 없는 동사에 보조 동사 ‘있다’를 붙일 수는 없다. ‘출발하고 있다’는 츨발했(한)다 ‘로 써야 하는 거다. 형용사 용법으로 쓰인 ‘있다’는 어색하기 짝이 없다. ‘회원들로부터 정기 모임 날짜를 당기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회원들이 정기 모임 날짜를 당기라고 요청했다’로 고쳐야 자연스럽다. ‘~관계에 있다’도 많이 쓰는 어색한 표현이다.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는 ‘가까웠다. (또는) 가까운 사이였다’로 해야 한다. ‘~에게 있어’도 지양할 표현이다. ‘~하는 데 있어’에서 ‘데’라는 의존 명사에 ‘곳’이나 ‘일’, ‘것’, ‘ 경우’의 뜻이 다 들어 있으니 최대한 줄이거나 쓰지 말아야 한다. 이런 유형의 습관적인 표현으로 ‘~함에 있어’, ‘~있음(함)에 틀림없다’가 있으니 조심하자.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들 : ‘~에 대한(대해)’에서 ‘대한’은 동사 ‘대하다’의 관형형이다. 저자는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까지 무슨 장식처럼 덧붙인다고 걱정한다. 더구나 ‘맞선’, ‘향한’, ‘다룬’, ‘위한’ 등등의 표현들로 분명하게 뜻을 가려 써야 할 때까지 무조건 ‘대한’으로 뭉뚱그려 쓰면 글쓴이를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든단다. 가령 ‘그 문제에 대해 나도 책임이 있다’는 ‘그 문제에 나도 책임이 있다’로 바꾸면 깔끔하다.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들 중 한 사람’, ‘~둘 중(가운데) 하나’, ‘들 중 어떤’, ‘~같은 경우’. ‘~에 의한’, ‘~으로 인한’도 쓰지 말라 한다. ‘말은 동어 반복을 어느 정도 허용하거나 즐기기도 하지만, 글은 그렇지 않다’ ‘의하다’는 ‘따르다’로, ‘인하다’는 ‘ 때문이다’ 또는 ‘비롯되다’, ‘빚어지다’로 바뀌 쓰자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 ‘가’만이 주격 조사고 ‘은’, ‘는’은 보조사다. 주격 조사 ‘이’,‘가’가 붙는 낱말은 문장 안에서 주어의 자격을 갖게 되고, 보조사 ‘은’,‘는’이 붙는 낱말은 문장 안에서 주제, 곧 화제의 중심이 된다는 뜻이다.     


   내 문장은 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 ‘~에’와 ‘~으로’는 혼동해서 써서는 안 되는 조사다. 가령 ‘이번 추석엔 고향으로 갈 수 없다’와 ‘앞에 가야지 뒤에 가면 어떡해!’는 ‘이번 추석엔 고향에 갈 수 없다’와 ‘앞으로 가야지 뒤로 가면 어떡해!’로 써야 어색하지 않다. ‘~에’와 ‘~을(를)’도 가려 써야 한다. ‘에’는 처소와 방향을, ‘을(를)’은 목적이나 장소를 나타내는 격 조사다. ‘~로의’, ‘~에게’로 처럼 조사가 겹친 표현을 쓰지 마라. ‘~에’는 무생물에, ‘~에게’는 생물에 붙인다. ‘~로부터’도 쓰지 말자.      


   당하고 시키는 말로 뒤덮인 문장 : 당할 수 없는 동사는 당하는 말을 만들 수 없다. (데다, 배다, 기다리다, 설레다, 개다, 살다) 두 번 당하는 말을 만들지 마라. 동사의 당하는 말은 기본형 어간에 접사 ‘이, 히, 리, 기’를 붙여 만들기도 하고, 보조동사 ‘지다’를 ‘~아(어) 지다’ 구성으로 붙여 만들기도 한다. 문제는 ‘이, 히, 리, 기’를 붙여 당하는 말로 만든 동사에 다시 ‘~아(어) 지다’를 붙여 두 번 당하게 만드는 경우다(‘둘로 나뉘어진 조국’은 ‘둘로 나뉜 조국’으로, ‘잠겨진’은 ‘잠긴’으로, ‘잊혀지지’는 ‘잊히지’로, ‘찢겨져’는 ‘찢겨’로 써야 한다.) ‘모으다’의 당하는 말은 ‘이’를 붙인 ‘모이다’이다. ‘모으다’의 준말인 ‘모다’의 당하는 말이 ‘모아지다’여서 ‘모이다’와 ‘모아지다’ 두 가지를 당하는 말로 쓴다. 당연히 ‘모여지다’는 쓰지 않아야 한다. 한자어 명사에 ‘~시키다’를 붙여 동사를 만드는데, 의도한 것과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일 때가 많다. 가령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줘’라고 해야 한다. ‘~시키다’는 ‘~하다’를 붙여야 어색하지 않다. 우리말 동사에도 그 잘못된 습관이 번져 간다고 우려한다. (“너 자꾸 거짓말할래?”가 바른 데, “너 자꾸 거짓말시킬래?”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최근 잘못된 높임말을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 아주 거슬린다. ‘커피 나오셨습니다’와 ‘포장이신가요?’는 ‘커피 나왔습니다’와 ‘포장해 가실 건가요?’라고 말해야 한다. 한 문장에 두 개 이상의 동사를 쓰지 말아야 한다. ‘논의가 된’, ‘준비가 된’, ‘발견이 된’은 ‘논의된’, ‘준비된’, ‘발견된’으로 써야 한다. 굳이 ‘될(할) 수 있는’을 고집해선 안 된다. 가령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는 ‘깨달은 것이다(깨닫게 된 것이다)’로 쓸 수 있다.     


   문장은 손가락이 아니다 : 그, 이, 저, 그렇게, 이렇게, 저렇게는 꼭 써야 할 때가 아니면 쓰지 않는 게 좋다. 문장의 기준점은 문장 안에 있지 문장 밖 글쓴이의 자리에 있지 않다. 같은 지시대명사라도 ‘여기, 저기, 거기’보다는 ‘이곳, 저곳, 그곳’이 훨씬 객관적이다. 동사의 과거형에 어미 ‘~던’을 붙여 관형형으로 만들어 쓰는 경우가 많다. 우리말의 시제는 과거, 현재, 미래뿐이어서 한 문장에 과거형을 여러 번 쓰면 가독성이 떨어지고 문장도 난삽해 보인다. 시작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라. 놀람, 슬픔, 어색함, 민망함처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움직임, 심리적인 변화는 시작과 끝을 명시하기 어렵다. 따라서 ‘시작하다’를 붙이면 어색하다. 가령, ‘갑자기 슬퍼지기 시작했다’는 ‘갑자기 슬퍼졌다’로 써야 한다. 말을 이어 붙이는 접속사는 삿된 것이다. 김훈의 <남한산성>에서 접속사가 딱 한 번 노출됐다는 저자의 분석을 보고 역시 교정 전문가로구나 생각한다. 삿된 주어들은 지시대명사나 인칭 대명사로 가리켜지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김훈은 그, 그녀, 그것, 그들을 금기시한다. 주어 하나에 서술어 하나, 서술어가 둘 이상일 땐 주어를 반복해서 쓴다. 이른바 김훈체가 그렇다.      


   저자 김정선(남자임)은 “김훈체를 읽는 것은 무슨 비결을 읽는 것처럼 감당하기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라 고백한다. 독자는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김훈의 글이 좋다. <남한산성>을 읽으며 느낀 긴장감은 수년 이 지나도 여전하다. 김훈의 글발 덕이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도서출판 유유에서 2016년 1월 초판을 냈고, 독자는 2017년 9월 초판 19쇄, 봄눈 203쪽 분량을 공부한 거다.          


   2017.11.2.(목)


P.S. 새벽에 치통이 생겼다. 근무 중에 참다가 퇴근하여 공주시 치과에 다녀온다. (평소에 이빨을 잘 딱지 그랬어, 그러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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