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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Apr 15. 2024

당신에게로

안소영 지음

모 국회의원 당선자가 퇴계 선생의 성생활에 대해 말해 논란을 일으키고, 결국 성균관에 가 사과했다는 기사를 본다.(2024.4.14)


   퇴계 이황이 상처하고 맞이한 둘째 부인을 소재로 쓴 글이다. 무·갑·기·을 사화라는 회오리 같은 삶에서 솎아낸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다. ‘남편 이황에게 전하는 권씨 부인의 마음’이란 부제를 달았다. 권씨 부인은 집안에서 사화를 겪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처지였다. 그런 권씨를 부인으로 맞아 준 이황에게 혼백이 되어 돌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한양 서소문에서 예안까지 한강을 거스르고 죽령 고개를 넘어 남편에게 이르는 열 엿새 동안을 그렸다.      


   작가 안소영의 글은 이미 『책만 보는 바보』에서 보았다. 『당신에게로』를 통해 작가는 독자를 몇 번이나 목이 메고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이황은 어떻게 정신줄을 놓은 아내를 맞이한 것인가?

권씨 부인은 왜 일찍 혼백이 되었는가?

이황은 권씨 부인을 어떻게 대했을까?

왜 독자는 몇 번이나 목이 메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는가? 한낱 텍스트에서......     

 

정신줄이 오락가락하던 아내가 이황의 귀애를 받고 해진 관복을 깁는다.

“바늘귀에 겨우 실을 꿰어 숭덩숭덩 뒷자락 솔기부터 호았습니다. 그런 다음, 구멍 나고 해진 곳에 다홍빛 천을 덧대었습니다. 콧잔등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한 땀 한 땀 공들여 기웠습니다. 도포의 옥색과 덧댄 천의 다홍색, 서투르나마 그 위에 땀땀이 지나간 흰 무명실...... 다 해 놓고 나니, 당신의 도포 자락에 화사하고 고운 꽃이 피어난 것만 같았습니다. 제 입가에서도 배시시 웃음이 피어났습니다. 다른 날보다 더 조바심 내며 당신의 퇴궐을 기다렸습니다.

저물녘에야 퇴궐한 당신이 관복을 갈아입으러 방에 들어오셨습니다. 바느질한 도포를 얼른 내놓았지요. 조금은 자랑스러운 표정이었을 것입니다. 도포를 펼쳐 든 당신은 흠칫, 놀라셨습니다. 더 우쭐해진 저는 눈을 빛내며 당신을 바라보았습니다. 제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시고는 당신이 말씀하셨습니다.

“부인이 직접 하신 게요? 정말 고맙소.”

그러고는 제가 펼쳐 들고 있는 도포 소매에 을 꿰셨습니다. 때마침 방으로 들어오던 어멈이 놀라 탄식했습니다.

“에그!”

하지만 당신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p. 89)     


다음은 이황이 정신줄이 오락가락하는 권씨 부인에게 한 말이다.

“날마다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보듯이 우리 안에 있는 마음도 자주 들여다보며 잘 다스려야 하오. 한번 어긋나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도 없이 빽빽해지지만, 한번 탁 트이며 드넓은 우주도 껴안을 수 있는 게 사람의 마음이오.” (p.93)   

  

권씨 부인의 혼백이 이황에게 하는 말이다.

“아아. 당신은 부디 마음 아파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아이의 명도, 저의 명도 거기까지였습니다. 짧았다 하나 아이는 이 세상에 다녀간 의미가 충분히 있었고, 아쉽다 하나 저는 당신 곁에서 충분히 행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온혜(溫惠, 따사로운 은혜)로, 당신에게로 다시 돌아가고 있습니다.” (p.170)     


『당신에게로』는 안소영님의 글이다. 2020년 출판사 <메멘토>에서 본문 182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글을 읽으며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듯하다. 좋은 글이다. 이어지는 ‘역사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 시리즈 『마지막 문장』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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