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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Aug 23. 2023

혼자 걸으며 만든 추억의 그림은 누구에게도 팔 수가 없

격몽요결 서문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학문(學文)이 아니면 올바른 사람이 될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 말하는 학문이란 것은 또한 절대로 이상한 다른 물건이 아니다. 그러면 이 학문이란 무엇이냐? 이것은 다만 남의 아비가 된 자는 그 아들을 사랑할 것, 자식이 된 자는 부모에게 효도할 것, 남의 신하가 된 자는 그 임금에게 충성을 다할 것, 부부간에는 마땅히 분별이 있어야 할 것, 형제간에는 의당 우애가 있어야 할 것, 나이 젊은 사람은 어른에게 공손히 해야 할 것, 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할 것 등이다. 

   이런 일들을 날마다 행하는 행동 사이에서 모두 마땅한 것을 얻어서 행해야 할 것이고, 공연히 마음을 현묘(玄妙)한 곳으로 달려서 무슨 이상한 효과가 나타나기를 넘겨다보지 말 것이다. 

   어쨌든 이 학문을 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막히고 소견이 어둡게 마련이다. 그런 때문에 사람은 반드시 글을 읽고 이치를 궁리해서 자기 자신이 마땅히 행해야 할 길을 밝혀야 한다. 그런 뒤에야 조예(造詣)가 정당해지고 행동도 올바르게 된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이런 학문이 사람들의 날마다 행동하는 데에 있음을 알지 못하고 공연히 이것을 까마득히 높고 멀어서 보통 사람으로서는 행하지 못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 학문을 자기는 하지 못하고 남에게 밀어 맡겨버리고서 자신은 스스로 이것을 만족하게 여기고 있으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바다 남쪽에 집을 정하고 살려니 한두 사람 학도들이 와서 나에게 배우기를 청했다. 이에 나는 그들의 스승이 되지 못할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한편, 또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아무런 향방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더욱이 확호(確乎)한 뜻이 없이 그저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묻고 보면 피차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남들의 조롱만 받을까 두렵게 생각되었다.

   이에 간략히 책 한 권을 써서 여기에 자기 마음을 세우는 것, 몸소 실천할 일, 부모 섬기는 법, 남을 대하는 방법 등을 대략 적고 이것을 <격몽요결 (擊蒙要訣)> 이라고 이름했다. 학도들에게는 이것을 보여 마음을 씻고 뜻을 세워 마땅히 날로 공부하도록 하고자하며, 또 나 역시도 오랫동안 우물쭈물하던 병을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고자 한다.      


바쁜 일상 때문이라는 핑계에 묻혀 나 자신을 돌아보지도 못하면서 남을 가르치겠다니

부끄러움이 여름 장마 되어 내 가슴을 흠뻑 적셔 놓았다. 

지난 시간을 되뇌며 10여 년 전에 읽었던 율곡 선생의 글을 찾아 나와 나 이외의 

함께 부끄러운 이들에게 묻혀주고 싶다.

이 이후의 글들을 시간을 쪼개어 끊이지 않게 하고 싶다.     

1994년 9월 3일 토요일 늦은 열시에



모퉁이를 돌아서면 거기 서서 기다릴 것 같고,

지나쳐 가는 저 차 속에서 나를 보고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자주 들르는 그곳 입구에서 서 있을 것 같고,

쏟아지는 비에 내가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것 같았다,

잠시 그대를 잊고 책에 빠진 나를 한 시간 째 말없이 바라보고 있을 것 같은 사랑하는이.

함께 있었던 그곳에서 약속 없던 나를 기다리며 어둠과 함께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랑하는이

울린 것 같았던 전화벨 소리는 다섯 시간이 지나도록 울리지 않고

이곳저곳을 헤매며 그대가 남겨둔 향기만 쫓아다니다가 오늘의 만남을

가슴으로 포기하고 돌아서는 나를 저 가로등 뒤편에서 미소로 반겨줄지도 모른다는 환상 속에서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하지만 내일도 있기에

혼자 걸으며 만든 추억의 그림은 누구에게도 팔 수가 없다.     

사랑하는 이를 찾아 헤매다 지쳐 잠든 내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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