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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Oct 03. 2024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

김도수 지음



   어제, 할아버지 제사를 모신다. 제사 준비에 일을 하지도 못하지만,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차남이라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게 제삿날 늦은 저녁에 하는 일이다. 읽다 만 두껍고, 어렵고 무거운 주제를 내려놓고 가져간 책이다.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 여남은 쪽을 읽다가 형님에게 ‘사랑비’에 대한 내용을 읽어주고 재미있고, 공감한다고 얘기했더니 ‘착하기는한디 쪼금은 또라이인게비다’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저자의 장모님께서 “우리 사우(사위)가 조깨 특이허긴 혀”라고 했으니.     


   퇴근하고 관사에 도착하자마자 어제 읽다 만 쪽을 찾아 읽는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겁기를 여러 번. 마침내 홀로 있는 관사에서 울고 만다. 오십이 넘어 책을 읽다가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기는 오랜만이다. 

   갱변을 건너야만 동네로 갈 수 있던 외딴 두 집 중 하나가 우리 집이었다. 여름이면 멱을 감고, 송사리, 피라미도 잡고, 겨울이면 썰매 타던 갱변은 수천 번을 건너다녀야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가슴에 노란 손수건 달고 아버지 손을 잡고 걷던 또랑은 아직도 있지만 시멘트로 덮어 놓아 정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가끔 꿈속에서 가보던 갱변 너머 논은 물이 잘남 잘남 하다.     


   글을 쓴 김도수 님은 

“퇴근하면 거실에 놓인 부모님 사진 앞에서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나란히 서서 인사를 건네야 일과가 비로소 끝나는 사람. 목요일 저녁이면 주말에 고향집 가지고 갈 보따리들을 현관에 가지런히 챙겨놓아야 비로소 안심되는 사람. 남에게 팔려버린 고향집을 12년 만에 기어이 되찾아 고향집 안방에 부모님 영정사진을 걸어 놓은 사람. 오래전에 사라진 고향 강변의 징검다리를 마을 울력으로 다시 놓은 사람. 관공서 표지석으로 끌려간 고향 강변의 ‘허락바위’를 되찾기 위해 간절한 민원 편지를 쓴 끝에 결국 제자리로 다시 돌아오게 한 사람. 시름시름 앓던 마을 정자나무에 갖은 애를 써서 살려냈으며 그 정자나무에게 마침내 ‘풀꽃상’을 안긴 사람. 취직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돌아가신 부모님께 용돈 드리는 통장을 만든 것이고 그 돈으로 생전에 부모님 땀 흘리던 밭두렁에 ‘사랑비’를 세워 주말마다 막걸리를 올리는 사람”이다.     


   근대화되어 사라져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뿌리 깊은 나무’에서 『숨어 사는 외톨박이Ⅰ.Ⅱ』 에 담았던 것처럼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는 베이비붐 세대가 겪은 농촌의 삶과 부모님들의 가난을 추억으로 엮어낸 산문이다.     


   시골에서 자랐거나, 시골에 부모님이 살아계시거나, 가족의 사랑을 느끼고 싶거나, 작은 마을 사람들의 삶을 추억하거나, 몸이 힘에 부친다거나, 아파트에서 사는 삶이 답답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거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아프거나 즐거운 추억이 있거나, 아무것도 아니더라도 ‘순수’란 무엇인가를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이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올해가 다가기 전 주말에 진뫼 마을에 가보련다.     


   어머님과 동네 어른들이 경로당에 모여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겨울 저녁을 생각하면, 시골 경로당을 지원해 주는 정부와 지자체가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옮겨두고 싶은 글이 많지만 하나만 옮겨본다. 

“허리 고부라지게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았던 ‘지게 세대’의 아버지들, 자식들 허기진 배를 채워주려고 논두렁길에서 허리 고부라지게 뜨거운 삶을 이고 나르던 ‘똬리 세대’의 어머니들, 생을 그토록 아름답고 위대하게 살아내신 분들이 이제는 하얀 머리카락 휘날리며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회관 방으로 모여들어 긴긴 겨울을 나고 있다.”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는 2015년 전라도닷컴에서 내놓은 산문으로 본문 381쪽 분량이다. 표지도 이쁘다. 간간이 배치한 사진도 진뫼 마을을 상상하게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이 책을 읽은 오늘 밤은 나도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보낸다.     


P.S. 2017년 9월 5일 화요일에


https://www.jjan.kr/article/2023012558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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