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다 Jun 17. 2024

지역 대회에 출전하다

티볼부 감독이 되다 (4)

 5월이 끝나가는 마지막 주 토요일. 드디어 우리는 지역 예선이자 대회인 교육장배 시합에 출전하게 되었다. 대회가 열리는 학교는 우리 학교에서부터 대중교통으로 약 40분 정도 거리에 있었고, 오전에는 초등부 시합이 먼저 있던 터라 우리는 오후 5시로 시간을 배정받았다. 그리하여 시합에 참가하는 학생들에게는 마지막 연습을 할 수 있게, 한 시까지 학교 운동장에서 집합을 하기로 이야기를 하고 나는 같은 날 아침에 있던 농구경기를 응원하러 다른 학교로 출발했다.


 농구경기를 응원하러 간 것은 나에게 여러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는 내가 도서관 사서 생활을 하면서 농구부 아이들과 자주 교내에서 시합을 가졌었기에, 가지게 된 아이들에 대한 친근함. 두 번째로는 아이들이 농구를 할 때 자주 나를 불러주셨고, 임시로 티볼부를 맡게 해 주신 체육 선생님에 대한 감사. 그리고 티볼부와 농구부에 두 곳에 동시에 소속이 되어 있는 소수 학생들의 컨디션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오전 10시, 농구 대회가 열리는 어느 학교 내에 위치한 실내 체육관으로 가자 농구화가 바닥을 긁으며 나는 삑삑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우리 학교 아이들이 저마다의 등번호가 적힌 유니폼을 입고 시합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열심히 해서 첫 경기를 꼭 이겼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람했다.


 우리 학교도, 상대팀 학교도 긴장을 해서 그런지 많은 골이 들어가지 않은 채로 전, 후반 모두 타이트하게 경기가 진행되었다. 아슬아슬하지만 1~2점 차로 계속 리드하던 우리 학교. 그러나 마지막 20초를 남기고 상대편이 파울을 얻어낸 뒤 자유투를 넣어 점수는 1점 차로 역전되었다. 아이들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분발했지만 결국 그 1점을 넘어서지 못하고 아쉽게 지고 말았다.


 30분을 넘게 이기고 있다가 마지막 찰나에 승부가 넘어가버린 경기. 승부가 미리 넘어가던 것이 아니라 아쉽게 져서 그런지 농구부 아이들은 무척이나 침울해했다. 실수를 돌이켜도 보고, 상대편의 파울을 중얼거리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분함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는 그 마음이 이해가 갔지만 그저 토닥여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머지는 체육 선생님의 강평과 위로에 맡기기로 하고, 나는 농구부를 응원하러 온 몇몇 티볼부 아이들과 함께 조금 일찍 학교로 돌아갔다.


 아침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점심을 사주고 약속했던 한 시에 학교를 가보니 아직 절반에 가까운 아이들이 운동장에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주장이었던 학생과 다른 성실한 학생들을 통해 다들 부원들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확인했고, 농구부를 겸임하던 아이들에게는 아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기 위해 PC방을 다녀오라고 했다.


 가볍게 수비 연습과 캐치볼을 하고 있으니, 늦게 출발했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 드디어 온전한 티볼부가 한 곳에 모이게 되었다. 땡볕에 지치지 않게끔 적당히 연습을 마친 후에 아이들을 잠시 모이게 했다. 지금까지 아침에 일찍 나오고, 저녁에 늦게 가면서 준비한 것들을 다 보여주고 오자며 아이들의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그리고 필요한 장비들을 챙겨 대회가 있는 중학교로 출발했다.


 확실히 낯선 타 학교의 풍경. 교문을 들어서자 우리 학교보다 앞선 순번이었던 두 개의 학교가 시합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대회를 총괄하고 있는 선생님과 주최석에 계신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아이들에게 짐을 풀게 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흙먼지가 조금씩 날리는 운동장. 거기에 파란색과 빨간색 조끼를 입고 선, 늠름한 두 학교의 학생들을 보았다. 우리와는 다른 조에 속해있어서 만약 우리가 이긴다면 결승에서 마주하게 될 학교들이었기에 나는 유심히 경기 내용을 지켜보았다.


 선공을 하는 학교는 지역 강호로 자리 잡고 있는 모 학교였고, 후공을 하는 학교는 이 운동장을 홈 그라운드로 쓰고 있는 학교였다. 일진일퇴의 공방. 한 팀이 점수를 따내면 다음 이닝에 다시 추격을 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나는 각 팀의 플레이와 날아가는 타구들을 보면서 침을 삼켰다. 무언가 확실히 준비를 하고 온 학교들에게서는 어설픈 느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 학교 아이들도 함께 지켜보고 있었는데, 조용히 침묵을 하기도 하고, 상대 학교의 플레이에 긴장이 되었던지 몇몇은 구석에서 캐치볼을 하기도 했다.


 박빙의 상황에서 첫 경기는 홈 그라운드를 쓰는 학교가 승리를 거두었다. 우리는 순번이 두 번째였기에 첫 번째 경기가 끝나자마자 곧장 출전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고는 각자 조끼를 입고 나란히 상대편을 보고 서서 심판 선생님의 시합 전 주의 사항을 들었다. 잠시 고개를 돌려 아이들의 얼굴을 보자 당당함이 서려있기도 했고, 고개를 푹 숙이거나 긴장감에 손을 꼼지락 거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선공으로 시작하는 우리 학교. 어설프게 첫 타구가 날아갔지만 긴장을 한 것은 상대편도 마찬가지였던지 실책이 나왔다. 그리고 차차 쌓여가는 베이스들. 아이들은 천천히 경기에 몰입하며 한 점씩 점수를 따내었다. 순조로운 출발에 기분이 좋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였다. 10명의 선수가 타격을 모두 끝내고 나면 공수 교대를 하여 수비를 하는 것이 티볼의 규칙인데, 공격을 끝낸 우리 학교는 곧장 글러브를 챙겨 수비를 하러 들어갔다.


 제발 아이들이 긴장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맞이하게 된 상대 학교의 공격. 우리 학교 아이들은 몸이 풀린 탓인지 어려운 타구도 잘 잡아내며 수월하게 경기를 이끌어갔다.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아이들은 훌륭하게 경기를 임했고 10점 차가 넘는 스코어로 마지막 이닝에 돌입했다. 너무 풀어지지 않게 집중하라고 소리치면서 마지막 수비까지 마친 우리는 16대 1이라는 기적과 같은 점수로 첫 경기를 마쳤다.


 경기 직후 아이들은 환호했다. 이번 경기를 이긴 것만으로도 시 대회 진출을 확정 지을 수 있지만, 반대로 지게 되면 여지없이 탈락을 하게 되는 결말. 그런 벼랑 끝에 놓인듯한 긴장감을 아이들도 가지고 있어서 그랬는지, 경기 결과가 나오자마자 아이들은 기쁨의 목소리를 터트렸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다독이며 다음 경기를 지켜보았다. 홈 그라운드를 쓰는 학교와 오늘 첫 경기를 하는 새로운 중학교의 대결. 저 승부에서 이긴 학교가 곧바로 우리 학교와 결승전을 치르게 되기에 나는 이겼다는 기쁨을 잠시 내려두고 다시금 경기에 열중했다.


 의외로 쉽게 끝난 승리. 압도적인 홈팀의 경기력에 나는 다시 한번 긴장을 했다. 여러 욕심과 생각들이 교차했다. 어쨌거나 우리 학교와 홈팀 학교는 결승전의 승패 여부와 관련 없이 시 대회를 진출하게 될 테지만, 그래도 완벽하게 승리하여 정상에 서고 싶다는 생각. 한 편으로는 준비 없이 너무 많은 것을 이루게 되면 시 대회에 들어가기 전에 아이들이 자만심에 빠지게 될까 하는 우려에 그래도 결승전은 졌으면 하는 생각. 이 두 가지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이윽고 지역의 최고는 누구인지를 정하는 결승전이 시작되고 각 학교는 저마다의 파이팅을 불어넣어 승리를 다짐했다. 수비보다는 공격력이 더 뛰어난 두 학교여서 그런지 수비를 잘해도 계속되는 안타에 양 팀의 스코어는 점점 늘어났다. 누가 이길지 도저히 판가름할 수 없는 상황이 언제까지고 지속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한 번의 실수가 그 팽팽함을 끝내게 되었다.


 선공으로 시작한 우리 학교 아이들은 상대편 장타자들이 보여주는 홈런에 자신도 그렇게 멋진 타구를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안타를 치려는 타구보다 홈런을 치기 위한, 무리한 스윙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당연히 몸이 경직된 상태에서 그런 타구들은 손쉽게 상대방의 외야수에게 가로막혔고, 3회 말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리는 끝내기 안타를 내어주고 경기가 종료되었다.


 경기가 끝나자 역시나 나의 감정은 복잡 미묘했다. 진 것에 대한 아쉬움. 그래도 시 대회는 진출할 수 있다는 안도감. 아이들이 이번 경기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느꼈으면 하는 기대감 등, 뭔가 담담하고도 차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승리한 홈팀의 선수들이 나에게 몰려와서 인사를 하고, 우리 학교 아이들도 상대편 감독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면서 훈훈하게 악수를 나누었다.


 상대편 선생님께서는 사실 2년 전에 우리 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시던 분이셔서 그런지, 나는 물론 우리 아이들과 안면이 있었다. 함께 나눈 정이 있어서인지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한 부분들이나 개선되면 좋을 부분들을 이야기해 주시면서 같이 시 대회에서 힘내보자며 응원의 말을 남기셨다. 나도 그런 귀한 가르침에 꾸벅 인사를 드리고는, 석양을 등진 채로 아이들과 함께 정문을 나섰다.


 이후는 고생을 한 티볼부 선수 아이들과 응원을 와준 감사한 축구부 학생들을 모두 모아 근처에 있던 맥도널드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맛난 저녁을 사줄 만한 예산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내가 체육 교과를 담당하는 선생님도 아니었고 관련 예산을 함부로 사용할 수도 없기에 아이들의 저녁식사는 온전이 내 카드로 계산을 하게 되었다. 스무 명이 넘는 학생들이 저마다 햄버거 세트를 시켜서 오늘 경기에 대해서 왁자지껄 이야기했는데, 나는 나의 중학생 시절이 떠올라서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날 아이들을 모두 귀가시키고, 홀로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문득 하늘을 보았는데, 보라색으로 물들어있던 하늘은 무척이나 아련하고 잔잔한 느낌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