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먹인 벽지가 아직 마르지 않아 퀴퀴한 냄새가 나는 작은방. 그 속에서 명준은 작은 노트북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노트북 화면의 흰빛은 문을 밝히는 조명 같았지만, 그 문은 늘 열리지 않았다.
‘제발, 제발…’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명준의 그 한마디는 지난 몇 년 동안 반복해 온 기도이자 주문이었다.
합격자 명단이라 적힌 공지 사항의 게시글을 누른 지 몇 분이 지났지만, 노트북은 계속 흰색의 공허만을 보여주며 시간을 끌었다. 마우스 커서가 새로고침과 종료 버튼 사이를 쉼 없이 오가고, 점자를 찍듯 책상을 두드리던 검지 손가락이 붉게 물들 무렵에야 드디어 글자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명준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서둘러 바닥에 놓인 가방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몇 번의 뒤척임 끝에 팔랑거리는 작은 물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듯한 정장 차림의 사진과 함께 응시표라는 제목이 붙은 종이 한 장. 잔뜩 구겨진 그 종이를 자신의 앞에 놓는 사이, 함께 딸려온 참고서와 필기구가 바닥으로 떨어져 소리를 냈지만 명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삼백이십…”
자신의 번호를 찾아 화면을 내려보는 명준. 바쁘게 움직이던 손이 이윽고 한 화면에서 멈췄다. 응시표와 화면을 번갈아보던 눈은 천천히 초점을 잃어가고, 이내 긴 침묵이 찾아왔다. 이미 네 번이나 겪었던 일. 그러나 익숙함이라는 단어는 명준의 마음에 깃들지 못했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서서히 방안에 내려앉은 적막과 같은 색깔이 되어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검은 절벽에 매달린 그에게 손을 뻗듯, 그의 핸드폰이 작게 빛을 내었다.
“나를 좀 내버려 둬.”
명준은 손을 뻗어 핸드폰 화면을 닫으려고 했으나 화면에 뜬 이름을 보며 멈칫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명준은 결국 핸드폰의 수신 버튼을 눌렀다.
“명준아 이번 설날에는 집에 내려오니?”
“이번에도 바빠서 못 가요. 말씀드렸잖아요, 다음 달 시험인 거. 기억 안 나세요?”
명준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으응, 당연히 기억하지. 엄마가 괜히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해. 집은 아무 걱정 말고 시험 잘 쳐”
"네. 조금 있다가 학원 가야 해서 이만 전화 끊을게요."
핸드폰을 내려놓자 벽이 둔탁하게 울렸다. 옆방에서 보내온 불쾌함의 표시. 1분도 채 걸리지 않은 전화였지만 명준은 불평할 수 없었다. 한 평 남짓의 방들이 옥수수처럼 연결된 이곳 고시원에서는 작은 발소리조차 누군가에겐 불쾌한 일이 될 수 있었으니까.
명준은 소리가 들려온 벽을 노려보다가 이내 체념을 하고는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던졌다.
발끝을 뻗으면 책상이 닿고, 발뒤꿈치를 들면 천장이 손에 닿을 만큼 작은방. 창문 하나 없는 공간에는 형광등만이 희미한 빛을 쏟아냈고, 그 빛은 방 안의 공기를 ‘살아 있음’이 아닌, ‘버티고 있음’으로 바꾸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벽에 핀 곰팡이처럼 이 방과 하나가 되겠어.”
답답함을 떨쳐내듯, 명준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아이씨! 또 어떤 새끼야?”
좁은 복도를 몇 발자국 걸으니, 공용 주방에서 새된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가보니 부스스한 머리의 어떤 여자가 활짝 열린 냉장고 안을 손으로 이리저리 휘저으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누군가가 또 타인의 반찬을 몰래 먹은 듯했다.
명준에게는 이 풍경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이 고시원에서 처음 1년을 보내는 동안 명준 역시 똑같은 일을 자주 당하곤 했다. 흔적도 없이 조용히 사라지는 식량. 주방 곳곳에는 반복되는 역사를 대변하듯, 이곳저곳에 경고문이 다닥다닥 붙어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명준은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잠시 후, 분노를 풀 곳을 찾지 못한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명준을 노려보았다. 명준은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자기는 범인이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여자는 명준의 반응에 다시 냉장고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명준 또한 별일 아니라는 듯, 발걸음을 옮겨 터벅터벅 출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고시원 밖을 나서자 선선한 바람이 명준의 이마를 스쳤다. 입추가 한 달이나 지났음에도 아직 가로수들은 초록의 잎사귀를 흔들거리고 있었다. 자동차들이 시끄럽게 포효하는 도로를 지나 식당들이 모인 번화가를 걸으니, 화려한 간판과 수많은 인파가 보였다.
“그냥 처음부터 일을 했으면… 조금 더 나았으려나?”
번화가의 밝은 간판 불빛이 눈가를 스치는 순간, 명준은 오래전 자신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도시에 처음 올라왔던 그날도 새벽 공기에 코끝이 시렸다. 하지만 마음은 어쩐지 부풀어 있었다.
스무 살 남짓이던 그 시절, 명준은 플랫폼에 서서 도시로 가는 버스가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 앞 유리에는 안개처럼 하얀 수증기가 얇게 서려 있었고, 기사 아저씨가 손바닥으로 유리를 훑으며 문을 열었다. 그때만 해도 모든 게 새로운 시작처럼 느껴졌다.
창가 자리에 앉자 잠시 뒤, 차창 밖으로 고향의 들판이 스치듯 흘러갔다. 아버지가 건네준 작은 봉투에는 ‘필요한 데 써라’라는 쪽지와 함께 몇 장의 지폐가 들어 있었다. 명준은 힐끗 보던 봉투를 얼른 다시 오므렸다. 그 순간 버스 정류장까지 나와서 손을 흔들던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명준은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도시에 도착한 첫날, 그는 처음 들어간 고시원 방에서 침대 매트리스를 눌러보고, 창문을 열어 외풍을 확인하고, 벽지를 만져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여기서 시작하는 거지.”
작은방이었지만 모든 게 가능해 보였다. 침대 위엔 깨끗한 이불이 놓여 있었고, 책상은 작은 스탠드 불빛 하나만으로도 꽤 밝아 보였다. 그때 스탠드를 바라보던 그의 표정은 지금의 명준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명준은 도시에서 크게 성공을 한 뒤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할 자신이 있었고, 실패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날 새벽의 소음조차 명준에게는 희망처럼 들렸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소음들이 오래된 기계의 진동처럼, 방향을 잃은 사람들의 신음처럼 들릴 뿐이었다. 그는 그 차이를, 이제야 정확히 이해했다.
“저 때는… 무언가 희망이 보였던 것 같은데.”
명준은 혼잣말을 했고, 웃고 있던 자신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천천히 사라졌다.
도시로 온 지 2년 차가 되던 여름. 명준은 고시원 입구 게시판에 붙어 있던 ‘주방 보조 구함’ 종이를 떼어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시급은 최저보다 조금 높았고, 근무 시간은 오후 2시부터 저녁 7시까지인 조건. 학원 수업에 참여하기 빠듯한 시간이었지만, 더는 미룰 수 없다는 마음이 앞섰다. 명준의 잔고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소진되었기에 당장 몸이라도 써야 했다.
식당은 번화가 끝자락에 있었다. 간판은 오래돼서 전구가 군데군데 나갔고, 출입문에는 기름때 묻은 손자국이 얼룩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주방의 열기가 훅 하고 명준의 얼굴을 때렸다. 난생처음 맡아보는 종류의 냄새에 명준은 당황했다. 마늘과 기름, 오래 달궈진 철판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처음이지?”
점장은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말했다.
“옆에 보이는 앞치마를 묶고 이리로 와. 설거지할 것부터 먼저 비워.”
스테인리스 통 안에서 그릇들이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명준은 고무장갑을 챙겨 끼고, 뜨거운 물줄기를 틀었다. 손바닥과 손등, 손가락 사이로 오래된 기름막이 미끄러졌다. 그 위에 다시 거품이 붙고, 다시 사라지는 동안 메뉴들이 가득 적힌 주문지들이 연이어 테이블 위에 놓였다.
“학생, 빨리 좀! 거기 계속 매달려 있으면 시간에 못 맞춰.”
앞치마를 두른 주방 이모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팔뚝에는 조그만 화상 자국들이 점처럼 박혀 있었다.
그녀는 허둥대는 명준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그를 도와 함께 불판을 닦았다.
“근데 공부한다며? 그래, 학생은 젊잖아. 뭐든 열심히 하면 다 할 수 있어.”
주방 이모의 그 한마디에 명준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젊다는 말은 위로처럼 들렸고, 동시에 명준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처럼 들렸다. 어떤 일이든 감당할 수 있을 거라는, 혹은 감당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그런 외침. 그래서 명준은 작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주방에서 나와 반찬들을 서빙하던 명준. 순조롭게 넘어가는가 싶었지만 잠시 뒤, 테이블 위 철판에서 불꽃이 튀었다. 명준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물수건을 들고 다가가자 점장은 한 발 먼저 집게로 불을 눌러 껐다.
“호들갑 떨 필요 없어. 그냥 차분하게 끄면 돼.”
경험이 많은 점장은 쉽게 말을 했지만, 명준에게는 제멋대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이 매번 어려웠다. 설거지를 하다 보면 해진 장갑 사이로 뜨거운 물이 들어와 손을 데기 일수였고, 형체가 없는 불꽃은 시시각각 명준의 옷으로 튀어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퇴근이 가까워지는 저녁 여섯 시 즈음이 되자 홀의 온도는 되려 높아졌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 화면을 열고 닫을 때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부지런하게 테이블을 오고 갈 때마다 그 사이로 술잔이 번쩍거렸고, 웃음과 한숨이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가 엎지른 소주와 함께 섞여 바닥으로 흘렀다.
퇴근 시간이 되면 북적이는 인파 탓에,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점장은 명준에게 가볍게 손인사를 할 뿐이었다. 그리고 전날 새벽까지 밀린 일감들은 다음 날 다시 명준의 손에 쥐어졌다.
그렇게 명준은 매일 불판에 끼인 기름을 긁어내고, 젓가락을 정리하고, 산더미처럼 쌓인 재료들을 선반 위로 올려 정리했다.
“자, 이건 이번 달 네 몫.”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점장이 계산대에서 종이봉투 하나를 꺼내어 명준에게 건넸다. 봉투는 생각보다 가벼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꾸벅 인사를 하며 가게를 나왔다.
일터를 벗어나니 기름 냄새를 한 겹 벗겨낼 듯이,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정류장에는 담배 연기와 오고 가는 버스의 금속 냄새가 얕게 섞여 있었다. 명준은 봉투를 재킷 안쪽에 깊숙이 넣고, 학원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식당에서의 일이 익숙해질 만큼의 시간이 지난 어느 저녁. 명준은 익숙하게 학원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았다. 명준은 빠르게 교재를 펼쳤지만, 이상하게 눈앞에 있는 글자들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조금 전까지 벗겨내던 기름막이 아직 눈꺼풀 안쪽에 얇게 남아 있는 듯했다.
옆자리에 앉은 학생이 형광펜을 쓱쓱 그을 때마다 종이에서 약간의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파도 끝에서 생기는, 하얀 거품들이 천천히 사라지며 내는 소리 같았다. 그것은 잠깐 집중하면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면 명준의 귀를 간지럽히며 명준의 눈꺼풀을 무겁게 했다.
명준은 잠을 깨고자 목덜미를 쓸어내리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나 명준에게 찾아온 피곤함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수업 중 꾸벅꾸벅 조는 일이 반복되자 학원에서는 학습 분위기에 방해가 된다며 명준에게 경고를 했다. 명준은 거듭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돈을 버는 것만 하던지 공부만을 하던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 결국 명준은 자신이 왜 여기 왔는지를 상기하며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는데, 돈을 벌면 오히려 공부를 할 수 없게 되는 이상한 연옥. 명준은 그런 끔찍한 도돌이표 속에서 쓰라림을 맛보았다.
오후가 되자 명준은 학원을 가기 위해 짐을 쌌다. 사실 짐이라 부를 것도 없었다. 학원에서 수업을 듣기 위한 수험서와 노트, 그리고 필기구 몇 자루가 전부였다.
편한 옷을 입고 서둘러 학원가가 있는 곳에 도착하니, 오후의 좀비들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방 하나를 매고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신발을 질질 끌며 걷고 있는 그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본 사람이 있었지만 명준은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본 후에 다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서로를 위로한다거나 불쌍하다고 여기는 순간, 지켜왔던 자존심이 댐이 무너지듯, 우르르 쏟아져 내려 서로의 마음을 무너트리게 될 테니까.
문턱을 넘어 들어선 강의실은 거대한 회색의 바다였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책상에 앉아 있었지만 표정은 비슷했다. 희망은 빛바랬고, 절망조차 희미해진 얼굴들. 명준은 어느새 그들과 똑같은 색깔의 물결이 되어 교재를 펼쳤다.
강사의 수업이 시작되자 웅성거리던 강의실은 새벽과 같은 침묵을 맞이했다. 명준은 항상 해온 것처럼 고개를 숙여 수험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안에 적힌 글자들은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금세 흐릿해졌다. 그리고 칠판을 긋는 분필 소리가 절 안의 목탁 소리처럼 느리게 울렸다.
‘다시 1년.’
명준은 수험서 여백에 작게 낙서를 했다가 이내 두 줄의 삭선을 그었다.
수업이 끝나자 창밖은 어느새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명준은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출입구로 걸어갔는데, 함께 수업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한쪽 방향으로 우르르 나가는 것을 보았다.
“오늘은 조금 다른 길로 가볼까?”
명준은 항상 걷던 귀갓길을 등지고 섰다. 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낯선 골목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드문드문 어둠이 서성이는 도로를 통과하자 눈앞에는 수많은 고깃집 간판들이 명준을 반겼다. 그곳은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냄비가 덜그럭 거리는 소리. 그리고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꼬르륵-’
오감을 끌어당기는 고소한 돼지고기 냄새가 풍기자 명준의 배에서는 배고픔을 알리는 소리가 북처럼 울렸다. 그리고 과거에 식당에서 일했던 자신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명준은 가로등 앞에 섰다. 몇 걸음만 더 걸어가면 그들처럼 밝은 빛 속에 머물 수 있었다. 하지만 명준은 한동안 거리를 바라보다가 두 눈을 질끈 감고는, 고개를 돌려 어두운 골목을 향해 나아갔다.
“역시, 이쪽으로는 오는 게 아니었어.”
명준은 불쾌한 것을 본 사람처럼 눈썹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어두컴컴한 샛길을 향해 걸어갔다. 며칠 전 비가 온 탓인지 저벅거리는 길바닥에는 담배꽁초며 구겨진 전단지들이 어지럽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을 걷던 명준은 숨을 고르기 위해 근처에 있는 작은 공원 벤치로 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흐릿한 그림자를 바라보던 그는, 문득 상록의 이름을 떠올렸다.
고시원에서 유일하게 ‘괜찮아요?’라는 말이 자연스럽던 사람. 당시 고시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어른스러웠던 그는 늘 웃었지만, 그 웃음은 마치 얇은 막과 같았다. 밝음을 가장한 어떤 포기의 결을 보는 듯이.
작년 겨울, 명준은 상록과 함께 컵라면을 먹던 밤이 있었다. 두 사람은 각자가 사 온 컵라면을 들고 나와 공용 주방 구석 탁자에 마주 앉았다. 탁자는 약간 비틀어진 다리 때문에 가끔 덜컹거렸고, 라면 용기는 흔들리다 국물을 한두 방울씩 흘렸다.
“국물을 다 먹으면 안 좋다고들 하더라고요.”
상록이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는 그냥 다 먹어요. 국물까지 먹어야 그나마 배가 부르니까.”
명준의 말에 상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면의 증기가 상록의 안경을 흐리게 했다. 상록은 고개를 약간 숙여 그 증기 너머로 말을 이어갔다.
“다들 앞만 보라고 하잖아요. 근데 제가 겪어보니, 앞만 보면 결국 자꾸 넘어져요.”
“그럼 옆을 봐야 해요?”
명준이 반쯤 웃으며 물었다.
“아니요, 옆을 보면 또 옆으로만 가게 되더라고요.”
상록이 젓가락 끝으로 공중에 선을 그렸다.
“적당히 아래도 봐야 해요. 내 발이 어디 있는지. 내 속도가 어떤지. 그걸 안 보면 내가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 모르게 돼요.”
상록이 한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상록은 가끔 이런 묘한 문장을 던졌다. 겉으로는 쉽게 들리지만, 곱씹으면 계속해서 여운이 남는 말들. 깔고 앉은 탁자 다리가 어딘가 닳아 있는지, 그의 말이 끝날 때마다 탁자가 아주 작게 덜컹거렸다.
“명준 씨는 목표를 향해 뛰는 편이에요, 걷는 편이에요?”
“글쎄요”
명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면발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마… 제자리?”
명준의 말에 상록은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상대를 놀리기 위한 웃음이 아닌, 깊은 공감이 섞인 웃음이었다.
“제자리가 나쁜 건 아닌데, 오래 있으면 땅이 꺼져요.”
“그럼 어떻게 해요.”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죠.”
상록은 자신의 젓가락을 살짝 기울였다.
“앞으로 간다는 감각만 잃지 않으면, 속도는 나중에 붙기 마련이니까.”
명준과 상록은 라면을 다 먹고 컵에 남은 뜨거운 국물까지 마저 들이켰다.
이후 각자의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상록이 문득 자신의 방 문 앞에 섰다.
“명준 씨에게는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상록은 명준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상록이 건넨 마지막 문장은 응원이 아니라 작별에 가까웠다. 복도 끝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형광등이 아주 약하게 떨렸다.
다음날 그는 더 일찍 학원에 가야 한다며 문을 닫았고, 그 문은 얼마 후 완전히 닫히게 되었다.
상록이 고시원에서 자취를 감추고 나서 며칠 뒤. 상록의 소식은 뉴스를 통해서 흘러나왔다. 불에 탄 차 안에서 발견된, 회색의 꼬질꼬질한 패딩. 명준은 그 옷의 주인이 상록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현장 사진을 비추는 뉴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곤 자신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때의 충격과 기억은 명준의 내면에 오래도록 묻혀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오늘, 그 과거의 그림자가 명준의 등을 향해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핸드폰의 시계는 어느새 새벽 한 시를 알리고 있었다. 고시원 골목으로 들어서자 맞은편에 사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는 언제나처럼 전봇대 옆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으나 오늘은 무언가 이상했다. 비스듬히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눈두덩이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짙은 그늘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발등에는 털어내지 않은 담뱃재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담배연기처럼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그의 손을 보며 명준은 보며 말을 걸어볼까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돌렸다.
“괜찮겠지…”
명준은 서로 얼굴만 대충 알고 있을 뿐인 그 남자를 무시하고 고시원으로 들어왔다. 명준의 등 뒤로는 두꺼운 유리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명준은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잠시 뒤 잠에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온 소란스러움에 명준은 잠에서 깨고야 말았다.
복도로 나가니 눈을 비비며 인상을 찌푸리는 고시원의 사람들. 명준도 무슨 일인가 싶어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아래를 보니 앰뷸런스 불빛이 골목을 붉게 때리며 깜빡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누군가가 흰 시트에 덮여 실려 나갔다. 명준은 순간 번뜩 알아챘다. 실려나가고 있는 형체는 바로 몇 시간 전, 줄담배를 피우던 그 남자라는 것을.
몸이 아니라 마음에서 서늘함이 흘렀다. 그리고 명준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오래된 균열이 목소리가 되어 나왔다.
“그도 어쩌면 나처럼 버티려다 끝내 무너진 것일지도 몰라…”
명준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는 곧장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고시원에서 일어난 소란이 무색하리 만큼, 한 달이라는 시간이 조용하게 흘러갔다. 명준은 또다시 다가온 시험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익숙해질 만도 했지만, 시험이 다가오는 순간마다 명준의 신경은 그 어느 때보다 곤두섰다. 빠트린 것은 없는지, 전에 실수했던 부분은 어디인지 등을 몇 번이고 되읽었다.
버스를 타고 시험장으로 향하는 명준은 마지막 한 글자라도 더 기억하려는 듯, 수험서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고는 문제들을 하나씩 중얼거렸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 명준은 평소처럼 볼을 손바닥으로 쳤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자는 자신만의 의식. 이후 시험지를 받은 명준은 심호흡을 하고 막힘없이 문제지를 풀어갔다.
종소리가 울리고, 명준은 자신의 마지막 시험지가 노란 봉투 안에 들어가는 것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는 손을 꼭 쥐며 시험장 밖으로 힘없이 걸어 나갔다.
시험장이었던 고등학교 운동장에는 누군가의 부모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멋쩍은 듯 웃는 수험생들과 그런 수험생을 웃으며 다독이는 부모님의 모습. 명준은 길게 늘어선 자동차의 행렬 옆을 지나며 터벅터벅 비탈길을 내려갔다.
고시원에 도착한 명준은 곧장 노트북을 열었다. 인터넷 카페에는 벌써부터 시험에 대한 답들과 예상 합격 점수가 올라와 있었다. 명준은 기록해 두었던 답들을 꺼내어 채점을 시작했다. 몇 번의 동그라미를 그리며 내려가다가 점점 삭선이 많아지는 손. 명준은 점점 속도가 느려지다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됐다!”
옆방에서 희열에 찬 외침이 들려왔다. 그 단어는 벽을 넘어와 명준의 머릿속에서 폭발하듯 울렸다.
명준은 책상을 내려쳤다. 쥐고 있던 볼펜이 부러지며, 잉크와 피가 뒤섞인 액체가 손등을 타고 떨어졌다. 명준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결국 명준은 분을 참지 못하고 방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째서 왜.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거야!”
그 질문은 명준의 중심을 향해 떨어졌다. 그리고 명준은 도망치듯 고시원을 나와 거리로 내달렸다.
고시원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도 모를 만큼, 명준은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걸었다. 그러다 비릿한 냄새에 고개를 들어보니 명준은 어느새 수산시장 입구에 서 있었다. 생선의 비린내와 물 튀기는 소리, 상인의 고함이 뒤섞인 혼란 속에서 문득 발등 위로 작은 움직임이 스쳤다.
고개를 숙여보니, 그곳엔 꽃게 한 마리가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면 금방 바깥으로 연결되는 문이 있음에도 꽃게는 계속 옆으로 걸으며, 사람들의 발 사이를 위험하게 지나갈 뿐이었다. 꽃게의 모습을 보던 명준의 가슴에서는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그리곤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앞으로 가면 되잖아! 저기에 문이 있는데, 넌 왜 자꾸 옆으로만 가!?”
그 말은 꽃게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수년 동안 옆으로만 걸어가던 자신에게 던지는 외침이었다.
상인의 손에 결국 잡힌 꽃게의 모습. 그 결말을 지켜보던 명준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그의 마음속에 있던 금이 크게 벌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 틈으로 새로운 결심이 올라왔다.
다시 돌아온 고시원의 입구. 문고리를 다시 잡는 순간 명준은 무언가를 확신한 듯,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 문 안에서 사는 한, 나는 꽃게처럼 또 옆으로만 움직이기만 할 거야.”
명준은 자신의 결심을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곤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이번 달로 계약 종료하겠습니다.”
고시원 주인은 명준의 결정을 만류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스스로가 놀랄 만큼 단단하고 단호했다.
짐을 챙기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가는 명준의 손은 떨렸지만, 그의 고개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이곳에 온 이후 처음으로 정면을 향해 걸어갔다.
하루가 지난 주말 저녁. 시험이 끝나서인지 고시원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지저분하게 느껴지던 명준의 방은 어느새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가방 하나에 모두 담긴 짐들. 지퍼 사이로 내려앉은 물건들은 명준이 버텨온 시간만큼 초라해 보였다. 명준은 자신이 처음 이곳에 오면서 책상에 새긴 ‘합격’이라는 글자를 멍하니 보았다. 그러고는 미련을 털어내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묵직함이 느껴지는 가방을 메고 천천히 문을 나서는 명준. 문을 닫기 전, 명준은 방 한가운데 놓인 작은 스탠드를 바라보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 스탠드 불빛은 꽤 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 불빛은 희미하게 깜빡이며 벽에 얇은 그림자 하나를 만들고 있었다. 그 그림자는 오랫동안 한자리에만 서 있던 사람의 모양처럼 보였다. 명준은 스탠드를 끄고, 방 안을 마지막으로 훑어보았다. 낡은 책상과 이불, 손때 묻은 옷걸이까지. 그 모든 것들이 조용히 ‘이제 됐다’고 말하는 듯했다.
“상록 씨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명준은 노란 가로등 불빛만이 비스듬히 스며들고 있는 복도에서 잠시 서서 혼잣말을 했다. 그리곤 짙은 어둠을 향해 몸을 던졌다.
달이 한가운데 떠 있는 자정에 가까운 시간. 터미널에는 남아있는 버스들이 몇 대 없었다. 명준은 시골로 가는 버스 티켓을 끊고 승차장으로 향했다.
“출발합니다. 어서 타세요.”
버스 기사의 외침에 명준은 서둘러 버스에 몸을 실었다. 티켓을 확인한 이후 버스 안의 불이 꺼졌다. 버스는 어둠을 뚫고 명준을 어디론가로 데려갔다.
버스가 멈춘 정류장은 어슴푸레했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는 흙냄새가 짙게 퍼져 있었다. 시골의 공기는 도시의 공기와 너무나도 달랐다. 명준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자 차갑고 촉촉한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대문이 없는 익숙한 담벼락 앞에 도착하자 경운기 앞에 있던 중년의 남성이 몸을 일으켰다.
“명준이…?”
둘 다 서로를 쳐다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오랜 세월이 녹아 있었다.
명준은 조용히 아버지를 끌어안았다. 명준의 마음속에서 딱딱하게 굳어있던 마음이 서서히 녹아내렸다. 연이어 어머니가 집 안에서 뛰어나오며 명준의 손을 붙잡았다. 두 사람의 온기가 여태껏 얼어 있던 마음을 천천히 덥혔다. 명준은 그제야 아주 작은 숨을 내쉬었다. 그 숨은, 오랜만에 찾아온 ‘살아있음’의 증명이었다.
다음 날, 아버지는 심어둔 작물을 보여주겠다며 명준을 들판으로 데려갔다. 오래된 경운기는 한참 만에 시동이 걸리는 듯 툴툴거리다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명준은 핸들을 잡고 잠시 숨을 골랐다. 손바닥 아래로 금이 간 고무가 거칠게 느껴졌고, 엔진의 진동이 팔과 어깨를 타고 천천히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경운기는 앞으로 기울어진 듯한 작은 힘으로 천천히 흙길을 밀어 나가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나지 않고, 옆으로 새지 않고, 분명히 정면을 향해 나아가는 움직임이었다. 바퀴가 흙을 눌러 자국을 남길 때마다, 명준의 몸도 그 리듬에 맞춰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던 불안과는 달랐다.
흩어지던 호흡이 천천히 돌아오고, 시야가 한 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명준은 흔들리는 핸들을 더 단단히 잡았다. 손등 위로 바람이 스쳤고, 먼 곳의 논두렁이 조금씩 형태를 드러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길은 좁았지만, 어디에도 막힌 데 없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비로소,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