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어릴 적 부모님께서 내게 빈 소라껍데기를 보여주시며, "이 껍데기를 귀에다 대면 바닷소리가 난다."라고 하셨다. 바다를 보기 힘든 내륙지역에 오래 살기도 했고, 그 당시 호기심이 왕성했었던 나는 신비한 바닷소리를 듣고자 귀가 짓눌릴 듯 소라 껍데기를 가까이 가져다 대었고, 바닷소린지 아닌지는 잘 몰랐지만 처음 들어보는 오묘한 소리에 심취되어 빈 소라 껍데기를 귀에 대었다 뗐다를 반복하며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중학생이 된 후 자연과학 수업을 들으며 나는 소라 껍데기에서 나는 소리가 진짜 바닷소리라는 것을 아니라는 걸 깨닫긴 했지만, 산타클로스를 만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믿음이 순수함에서 기인하는 것처럼, 어린 시절의 내 모습 또한 순수함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때의 내 모습이 그리 부끄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바닷가 인근에 집을 얻어 온갖 조가비들과 바다를 원 없이 보고 있지만 이상하게 모래에 파묻혀있는 소라 껍데기를 보면 많은 생각이 난다. 지금은 속이 비어있지만 한 때는 분명 무언가가 머물렀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손에 들고 있는 이 빈 껍데기가 퍽 슬프게 보이기도 한다.
어지럽게 묻은 모래를 가볍게 툭툭 털어내고는 어린날의 내 모습처럼 귀에 가져다 대본다. 이제는 빈 껍데기에서 어릴 적 들리던 그 오묘했던 바닷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그 언젠가 소라가 머무르던 순간의 푸르렀던 하늘과 소라가 그렸던 세상의 소리가 나직이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