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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Feb 09. 2022

천 원을 주운 날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적절히 시원하고 햇볕은 따사로운 아침이었다. 철그덩 소리를 내는 낡은 현관문을 잠그고 높다랗게 솟은 오르막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길 한가운데에 수상한 종이 조각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해보니 아직 손 때가 묻지 않은 빳빳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었다. 풀숲이나 나무 밑이 아닌 길 중간에 지폐가 놓여 있다니. 나는 이 가벼운 것이 어째서 바람에 날아가지 않고 여기에 멈추어 있나를 잠시 생각했다. 그러고는 천 원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주변을 살폈다. 출근길에 바쁘게 뛰어가던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것일까? 아니면 폐지를 줍는 어르신께서 흘린 것일까? 나는 출처가 묘연한 지폐 한 장의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주변을 한참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핸드폰의 시계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나를 부추겼기에 나는 서둘러 길을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익숙한 출근길을 지나면서도 마음은 계속 찝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고작 천 원 한 장 주은 것인데. 또 어찌 보면 공돈이 생겨 기분 좋은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는 왠지 그러지 못했다. 열심히 일하면서 돈을 벌었던 소설 속의 김첨지도 결국은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는데, 아무 대가 없이 돈을 주운 나는 얼마나 나쁜 일이 생기겠느냐 하는 걱정이 생겼다. 15분가량밖에 되지 않는 출근길이었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쌀가마니를 어깨에 얹은 것처럼 발걸음이 무거웠다.


 도서관 문을 들어서며 직원분들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는 내 자리로 걸어가서 의자에 힘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괘씸한 천 원 같으니라고. 붕어빵도 천 원치를 사면 이 정도 효율이 안 나오는데, 이놈의 천 원은 자신의 가치 그 이상의 고통을 나에게 선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동안 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처럼 하얗게 빛나는 모니터 앞에서 한숨을 연거푸 쉬던 나는 결국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 기부를 해버리자!'라고.


 나는 빠르게 포털 사이트를 열어 '기부'를 검색했다. 무엇이든지 제일 첫 번째에 나오는 기부요청 목록에다가 돈을 기부하겠다는 생각으로 의지를 불태웠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부담에서 벗어나는구나 하며 미소를 짓고 있는데, 아뿔싸. 화면에는 세 가지의 기부 목록이 나왔고 그중 두 개가 나를 갈등의 늪으로 빠져들게 했다. 하나는 독거노인을 위한 기부, 다른 하나는 결식아동을 위한 기부. 한쪽은 지금껏 이 나라를 일구어온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앞으로 이 나라를 지켜갈 인재들이 아니던가? 나는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어떤 것이 더 옳은 일이라고 감히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아, 신이시여. 어찌 저를 시험하십니까?'   


 결국 고민을 하던 나는 내 마음이 원하는 방향에 따르기로 했다. 두 곳 모두 기부하는 것으로. 한쪽만 기부를 하면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것 같다는 마음에서 각각 똑같은 돈을 기부했다. 물론 기부하기 버튼을 눌렀더니, 기부금액이 최소 만 원 단위부터 시작한다는 것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이미 결단을 내렸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절차를 완료한 끝에 '기부해주신 돈은 좋은 일에 쓰겠습니다.'라는 안내 메시지를 끝으로 나는 한숨을 돌렸다. 그러곤 천 원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도 복이 갔으면 하는 짧은 바람도 함께 남겼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자 평범한 일상은 다시 내게로 찾아왔다. 적당히 시원한 날씨는 나를 반겼고 눈부신 햇살은 창문으로 새어들었다. 몇 명의 손님들을 미소로 응대하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앞으로는 제발 길가에 돈이 떨어져 있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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