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사람에게 밥을 사는 이유

by 그리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호감이 있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평소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모한다. 그 이유는 그 사람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돈 보다 값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또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은 그렇지 않은 시간보다 더 가치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기준으로 우리는 서로 간의 친함과 친하지 않음을 나누기도 한다. 상대방이 나와 약속을 잡으려 하거나 밥을 산다면 어느 정도 호감이 있는 것이고 아니라면 나에게 호감이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 역시나 호감이 있는 사람에게만 하는 이런 행동들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고 있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좋은 사람에게는 무언가 연락을 하고 싶어 지게 되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니까. 하지만 나는 가끔 이런 상식을 뛰어넘어서 특이한 행동을 할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기어코 밥을 사고야 만다는 것. 어찌 보면 굉장히 모순적이기도 한 이런 행동을 왜 하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할 사람들을 위해 나는 이 글을 남긴다.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면 싫은 사람에게 밥을 산다는 행동에 대해서 '도대체, 왜?'라는 물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보통은 자신과 맞지 않는 소위 '비호감'인 사람에게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 싫은 게 당연할 테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은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그저 내가 오래도록 지녀온 성향들이 그렇게 하도록 나를 이끈다.


평소의 나는 타인으로 부터 무언가를 받으면 매번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고, 마음속으로 이 사람에게 몇 배는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보답을 하자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무언가를 받았다면 보답을 위해 그 사람을 반드시 찾게 된다. 일반적으로는 그 사람과의 만남에서 적절한 보답을 하면 행동이 마무리가 되는데, 보통 그렇게 끝나는 경우가 잘 없다. 친절한 사람은 만날 때마다 나에게 감사함을 남기기 때문에, 나는 다시 보답을 하기 위해 그 사람을 찾게 되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서로의 관계가 깊어지게 된다. 좋은 사람이라면 몇 번이든 밥을 사도 기분이 좋다. 그것은 가까워지기 위한 나의 표현이니까.


하지만 싫은 사람에게 밥을 살 때는 이런 마음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굴레를 끊고, 다음에 이 사람과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청산'의 의미로 밥을 사게 된다. 더 이상 이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이 남는 것이 싫어서 이자를 내듯 평소보다 더 융숭하게 대접을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절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배려받지 않으려고 한다. 이미 단호하게 마음을 먹었으니, 그 사람과 다음에 다시 만나는 일이 없도록 나름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물론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냥 속 시원하게 안 사주고, 안 만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 신경 쓰지 말자고 해도, 막상 사람 앞에 서면 단호해지지 못한다는 것을. 그래서 달리기를 할 때 결승점을 표시해 두는 것처럼, 내 마음에 이정표를 남긴다는 의미로 싫은 사람에게 밥을 사는 것이다.


싫은 사람에게 밥을 사는 첫 번째 이유가 '청산'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자연스러움을 위해서'이다. 평소에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 누군가 한 명이 정색을 하면 분위기가 싸해지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바로 옆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보다도 정색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은근히 더 많은 관심이 가게 된다. 나는 관계에 있어서 이런 '정색'을 하지 않기 위해 싫은 사람에게 밥을 산다. 나는 더 이상 이 사람에게 불필요한 관심을 받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다.


필요할 때만 사람을 찾는, 소위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 친구를 두는 사람들은 은근히 관계에 예민하다. 이런 사람들은 친구가 하나 떠나가면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자원이 하나 떨어져 나가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티를 내거나 대놓고 멀어지려 하면 어떻게 해서든 붙잡기 위해 노력한다. 이때 마음이 여린 사람들은 비호감인 사람이 건넨 사과에 '한 번 더 믿어볼까?' 하며 관계를 이어가지만, 나는 이런 것을 단호하게 거절하자는 각오를 새긴다. 그래서 애초에 이런 번거로운 상황이 오지 않게끔. 상대방이 내가 멀어진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한 용도로 '자연스럽게' 밥을 사는 것이다. 그리하면 상대방은 내가 평소와 같은 모습이라 생각하면서 신경을 쓰지 않게 되고, 나는 그 무관심을 기회로 삼아 손이 닿지 않을 거리까지 서서히 멀어진다. 어떤 노래 가사처럼, 잊히는 줄도 모르고 잊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 이것이 친해지기 위함인지, 멀어지기 위함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것을 감별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냥 다음에 만날 약속을 넌지시 던져보는 것이다. "다음 달에는 여기 같이 가볼래?"라고 물음을 던졌을 때, 상대방이 "응, 거기 좋아."라던가 "거기서 이런 것도 같이 해보자."와 같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오늘의 만남은 친해지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글쎄",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와 같은 애매하고 두루뭉술한 답변이 나온다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물론 호감이 있어도 정말로 바쁜 일정 때문에 거절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아마 상대방이 '다른 날짜에 보는 건 어떠냐'며 적극적으로 권하게 될 것이다.)


글을 마치며 내가 이 글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은 결코 '지금 나와 만나는 사람은 과연 어떤 마음일까?'를 고민해보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목표를 위해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 발걸음은 무척이나 단단하고, 단호할 수 있음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관계란 사실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사람은 결국 거울처럼 살아가니까. 내가 상대방에게 베푼 게 많다면 상대방도 지극히 긍정적인 모습을 나에게 보여줄 것이다. 반대로 내가 서운하게 했던 것이 있다면 상대방은 똑같이 서운한 모습을 내게 보일 것이다. 그러니 '주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그저 오늘 하루 동안 만날 인연들에 최선을 다하자. 그 어떤 사람이라도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인연이 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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