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났던 날이
맑은 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했다.
그날의 하늘은
소나기가 세차게 떨어지고
바람 또한 제멋대로 불었으나
그 때문에 나는 오히려 행복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대와
맑은 날의 추억을 떠올리려 하면
그런 날이 너무나도 많아
쉽게 떠올릴 수 없겠지만
비를 맞으며 걸었던 날을
떠올리려 했을 때는
곧장 그날이었구나 하며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기에.
그날에 내린 차디찬 빗방울이
내 삶에 책갈피 하나를 새겨주어서
행복한 순간이었음을 잊지 않게 해주어서
나는 그걸로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