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바람이 불어온 탓에 고개를 들어보니, 노란 은행잎이 서로 부딪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대부분은 떨어졌지만 아직 가지를 붙잡고 있는 몇 개의 잎사귀. 그 위태로운 모습으로부터 전해지는 계절에 대한 아쉬움. 너무 짧았던 가을에 대한. 그리고 그만큼 길어질 겨울에 대한.
가을이 떠나는 길을 축복하기 위해, 갈색의 카펫이 된 이파리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속삭인다. 나처럼 훌훌 털어버려야 다음이 온다고. 놓아버려야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고. 그러나 나무는 그 말에 차마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고 뻣뻣한 고개로 하늘만 쳐다볼 뿐이다.
잠긴 발을 빼내려 걸음을 옮기자 한때 푸르렀던 것들이 한데 모여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것들이 더는 이곳에 머물 수 없다는 걸 느낀 탓인지, 잘게 부서지는 수고로움을 안고 내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잠깐이나마 곁에 있어주어 고맙다고. 다음에 올 것들을 위해 서둘러 나를 잊어달라고. 돌아오는 계절처럼 해가 지고 나면 다시 또 나는 이 골목 위를 걷겠지만, 그때 이곳에는 풀 내음 가득한 바람도 익숙했던 바스락거림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