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를 쓰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다 Nov 28. 2022

가을 잎새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 탓에 고개를 들어보니, 노란 은행잎이 서로 부딪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대부분은 떨어졌지만 아직 가지를 붙잡고 있는 몇 개의 잎사귀. 그 위태로운 모습으로부터 전해지는 계절에 대한 아쉬움. 너무 짧았던 가을에 대한. 그리고 그만큼 길어질 겨울에 대한.


가을이 떠나는 길을 축복하기 위해, 갈색의 카펫이 된 이파리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속삭인다. 나처럼 훌훌 털어버려야 다음이 온다고. 놓아버려야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고. 그러나 나무는 그 말에 차마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고 뻣뻣한 고개로 하늘만 쳐다볼 뿐이다.


잠긴 발을 빼내려 걸음을 옮기자 한때 푸르렀던 것들이 한데 모여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것들이 더는 이곳에 머물 수 없다는 걸 느낀 탓인지, 잘게 부서지는 수고로움을 안고 내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잠깐이나마 곁에 있어주어 고맙다고. 다음에 올 것들을 위해 서둘러 나를 잊어달라고. 돌아오는 계절처럼 해가 지고 나면 다시 또 나는 이 골목 위를 걷겠지만, 그때 이곳에는 풀 내음 가득한 바람도 익숙했던 바스락거림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