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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Jan 06. 2023

선선한 날


선선한 아침이다.

강물의 가장자리는 얼어있고

소나무 잎새에 성글게 내린 서리가

아직 선명한 빛을 내뿜고 있지만

그래도 내겐 선선한 아침이다.


내가 이다지도 시린 풍경을

선선하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그보다 더한 나날들을

이 자리에서 버텨냈기 때문이다.


잠깐만 꺼내놓아도

찬 공기에 피부가 아려

두 손을 내어놓지 못한 날이 있었다.


새벽에 내린 눈이 발목까지 쌓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던 날도 있었다.


그리고 두꺼운 신발 속에서

몇 개의 발가락들이 얼어붙어

부은 발을 부여잡고

잔뜩 움츠러든 날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저 춥기만 한 이런 날은

내게 더 이상 곤란도, 슬픔도 되지 못한다.


강한 자극을 겪고 나면,

적당한 것은 그저 평범함이 되는 것일까?


오늘 내가 느끼는 설움이

그저 그런 것이라고 느껴지는 걸 보면

과거의 나는 꽤 시린 날을 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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