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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Jun 17. 2024

화분에 모심기.

'한결같은 일상에 현실적인 감성을 품다'

 

화분에 모심기 grigogl [도연]

 해가 기울어질 무렵 친구네 농막에 도착했을 때, 친구 어머님은 화분마다 무언가를 심고 계셨다. 넓은 텃밭을 일구시기에도 많이 분주하실 텐데, 하우스 앞쪽으로 크고 작은 화분들이 가득했다. 자투리 땅도 아까워 빼곡히 심으시고는 그것도 모자라셨는지 화분에까지 터를 넓히시는 모습에 감탄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30분 전..

"몸은 어때? 뭐 아프겠지. 회복하려면 오랜 걸린다더라"

친구 어머님이 전화를 주셨다.  "김치 가지러 와 김치 조금 담아놨어"  분명 조금은 아닐 것이었다. 굽은 허리와 불편한 다리로 다니시며 만드셨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빨리 오라는 말씀 한마디에 담긴 마음을 알기에 부지런히 움직였다.

어머님의 둘째와 우리 부부는 친구들이다. 그리고 첫째 아드님과 남편의 이름이 같다. 그러다 보니 어머님은 나더러  큰며느리라고 농담을 하곤 하시는데, 반찬 얻어먹는 이리 게으른 큰며느리라니... 친구네 가족과 캠핑도 함께 다니며 수시로 오고 가는 사이들이라, 멀리 계셔서 자주 못 뵙는 친정엄마보다 친구 어머님이 더 편할 때도 있다.

 움직임이 힘든 나는 하우스 안에서 보고만 있을 뿐이다. 

"화분에 뭐 심으세요?"

"뭐 심긴~~ 모 심지. 기다려 다 심고 갈게"

세 개의 화분을 빼곡히 채우시고 나서야 일을 끝내셨다. 정말 쌀 수확을 하시는 거냐고 여쭤보니 지난해에도 밥그릇 하나정도 수확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이상하다. 그리 농막을 다녔는데 화분의 벼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만큼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쌀 한 그릇 누가 그냥 줘? 다 움직여야 먹는 거지" 화분들에 모를 심으시는 어머님의 신박함에 감탄했고, 그 안에서 쌀이 한 공기나 나온다는 것에 놀랐다.

 저녁이 되면 종종 남편과 함께 산책을 간다. 시골이라 조금만 걸어 나가면 여기저기 논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너른 논들 사이에 10평이 좀 넘을까 말까 한 논이 있다. 우리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궁금해하곤 했다. 이렇게 작은 크기의 논에서 쌀이 얼마나 나오려나라든가 고된 노동에 비해 수확량이 적을 텐데.. 차라리 그냥 사 먹는 게 낫지 않을까 라면서 일면식도 없는 논주인을 걱정을 하곤 했다. 하지만 친구어머님을 뵙고 온 후로는 그 논을 바라보는 시각이 사뭇 달라졌다. 이야기의 관점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작은 땅을 경작하는 것이 기계도 사용할 수 없으니 더 힘들 테지만 수확한 쌀들이 더 귀하겠네라든가, 어머님네 화분들에서 한 공기 정도 수확한다면 여기는 꽤 많이 나오겠지라든가 하는..

산책 중에 남의 논을 보면서 우리는 여전히 우스울 정도로 진지하다. 지루할 수 있는 한결같은 일상에 지극히 현실적인 감성 몇 스푼이 오고 가며 걷는 시간이 좋다. 여름이 지나고 황금물결을 이루는 논을 볼 때쯤이면 손맛이 좋은 어머님의 화분에서도 잘 익은 벼들이 고개를 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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