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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Jun 19. 2024

엄 마.

엄마의 회환.

엄마의 회환. grigogl [도연]


엄마의 배웅. grigogl [도연]

 

딸 :  엄마 내가 할게.   

       아니 그냥 계시라니까.. 알았어요.

       엄마 쌀 내가 씻을게.

       쌀뜨물은 어디에 버릴까?

       아니 내가 닦는다니까요.

엄마 : 요거는 싹 닦아서 놔.

        찌꺼기 헹궈서 이 그릇에 붓고..

        이리 줘.

        그건 밖에 버리고 오게.

 부엌에서의 실랑이는 몇  마디의 반박과 불만의 목소리 끝에 늘 "네 네"로 끝나기 일쑤다. 엄마의 깔끔한 루틴을 이길 수 없음을 알기에 적당한 선에서 백기를 들 수밖에 없다. 딸들과 며느리들은 부엌 문턱을 넘는 순간 무뎌진 감각을 최대한 예민하게 끌어올려야 한 소리라도 덜 듣고 나올 수 있다. 종종 엄마의 눈길을 피할 수만 있다면 '에라 모르겠다' 대충 쓱쓱.. 하기도 하는데, 어느새 엄마는 부엌에서 지나간 손길들을 다시 훑어내곤 하신다..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위엔 음식 얼룩이 없어야 하고, 기름을 사용한 음식을 하는 도중에도 사방으로 튄 기름까지 신경을 쓰며 해야 하는 이중고가 있다. 방에는 요가 깔려 있는 한켠에 비닐을 하나 놓으시고는 수시로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며 눈에 띄지도 않을 것 같은 쓰레기들을 집어넣으신다. 한결같이 고집스러운 모습은 모진 풍파를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이셨으리라 미루어 짐작해 보곤 하지만 그래도 자식들은 피곤하다고 쑥덕거린다.

 "국문을 깨우쳤으면 좀 더 편히 살았을 텐데.. 그 어릴 때 수양딸로 들어간 집에서 주인집 딸을 가르치려고 훈장이 왔었어. 15일만 하고 그만두더라고. 주인집 딸은 깨우치지 못해 혼이 자주 났었거든. 나는 밖에서 불을 지피며 부지깽이로 배웠어. 오히려 주인집 딸보다 국문을 금방 깨우쳤는데.. 재미있었어. 몇 개월만 더 했어도 다 외웠을 텐데.. 그래도 15일 배운 걸로 여작정 잘 살았어"

너무 많이 들어서 외울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이야기들은 이제는 엄마가 나의 어린 딸처럼 안쓰럽고 측은하다. 엄마의 이야기가 귀찮은 푸념이라 생각 되거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으로 더 이상 다가오지 않는 것은 오십 넘은 아줌마의 넉살 때문 일지, 철이 들어서 일지는 잘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의 세월을 깊숙이 응시하고 이해하는 마음과 현재 진행형인 삶을 공감하는 마음은 별개인 듯하니 말이다. 진득하니 말동무를 해드리지도 못하거니와 결국엔 바른말 투성이로 언쟁이 오가기도 하니 좋은 딸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뿐이다.

 한 번은 엄마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남편에게 4박 5일 휴가를 받은 적이 있다. 보통은 가더라도 가족이 함께 가거나, 형제들이 함께 모이는 일로 시골을 갔었는데 오롯이 혼자 가기는 처음이었다. 늘 몸이 약해 힘들어하는 막내를 보는 엄마의 마음은 애틋했고, 아버지의 빈자리로 쓸쓸하게 혼자 지내시는 엄마를 보는 딸의 눈길도 따뜻했다. 그렇지. 이런 거지. 가지 많은 엄마의 가지 하나이기를 바랐던 순간이 이런 거였어라고 심취해 있을 즈음, 역시 옆집 엄마 옆집 딸이 아니었다. 삼일이 지날 무렵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던 서로의 시선은 현실로 돌아왔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잔소리의 불안한 티키타카는 몇 번이라도 감정의 경계를 벗어날 뻔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로를 잘 아는 엄마와 딸은 위험한 수위를 넘지 않으려 애쓰며 4박 5일을 아슬아슬하게 잘 보냈다는 것이다.

 분홍셔츠, 분홍조끼, 분홍우산, 주황색모자가 잘 어울리는 31년생 우리 엄마, 외로운 길을 뚜벅뚜벅 당당하게 걷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과 맞닥뜨려야 했을까..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버린 엄마의 일생이 더는 외롭지 않았으면 한다. 휘어질 뿐 부러지지 않을 바람 잘 날 없는 가지들이 심심하지 않게 늘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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