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연 Jun 20. 2024

무늬만 CCTV.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마세요! 종량제 봉투에 버려 주세요!

무늬만 CCTV grigogl [도연]

 저녁나절, 의도하지 않은 반상회가 열렸다. 모이신 분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이야기는 제자리만 맴맴돌뿐 진전이 없었다.


“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으니 들이밀 수도 없고..”

“ 가서 따져볼까? “

“ 그건 좀.. 정말 그렇게 했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 3주 전부터 저 상태인데 가져가지도 않고.. 버린 사람을 찾아낼 수도 없으니..”

“ 내 말이 맞아 그이가 그랬다니까.. 전에 이런 일이 없었는데 그 아저씨 왔다 갔다 하면서부터잖아.”

“ 치워 달라고 민원을 넣을까요?”

“ 저렇게 방치하면 계속 더러워질 텐데요 “

“ 저 상태인데 가져갈까? “

“ 제가 내일 전화를 해볼게요.”


 문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쓰레기였다. 여남은 주택들이 모여 있는 우리 동네의 쓰레기 수거일은 월요일과 목요일이다. 일요일 저녁과 수요일 저녁이면 길가에 만들어 놓은 공용 쓰레기 배출 장소에 잘 분리된 쓰레기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쓰레기를 모아 놓는 거치대를 만들기 전까지는 어수선한 부분도 있었지만, 동네가 지저분해지는 걸 원하지 않으시는 이웃분들의 실천으로 관리가 잘 되고 있는 편이었다. 가끔 외지인의 차가 지나가다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경우가 있지만, 그 정도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집이 가까운 내가 할 수 있었다. 버려진 쓰레기를 그대로 방치하면 같은 자리에 계속 버리고 가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에 종량제 봉투를 들고 한 번씩 둘러보곤 했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세 덩이의 쓰레기더미는 3주 전부터 있었다. 덩치나 작아야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릴 수 있는데 쉽게 버릴 수도 없는 크기였다. 며칠이 지나자 검은 비닐 표면에는 경고장이 붙어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버린 사람은 다시 오지 않거나, 모른 체할 가능성이 크고, 경고장만 붙여 놓을 뿐 수거해 가지 않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비가 오니 빗물이 들어가서 썩기도 하고, 결국은 찢어져서 안에 있던 쓰레기들이 밖으로 나오기까지 했다. 저런 상태라면 다른 쓰레기들도 곧 쌓일 것이다. 몸상태만 아니라면 100리터 종량제 봉투 몇 장을 사다가 옮겨 담았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니 답답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가 지나면서 동네분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분명 동네사람들은 아닐 텐데.. 그렇다면 차로 싣고 와서 버렸을 거라는 추측과 새로 드나드는 낯선 이의 소행일 거라는 추측들이 난무했다. 3주가 지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심증만으로 굳어진 추측들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저 골칫덩이 쓰레기더미를 치울까 하는 것에 의견이 모아져야 했다.


 동네분들은 진지했다. 어르신 중 한 분은 의심이 가는 사람에게 따져 보자는 의견을 내놓으셨지만, 선뜻 동의하는 분들은 없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처럼 누가 앞장서서 갈 것인가가 문제였다. 한 분은 해코지를 하면 어찌하냐고 걱정도 하셨다.  의논 끝에 이웃분 중 한 분이 쓰레기 더미를 치우는 것을 해결해 주시기로 하셨고, 추후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나와 남편이 나서기로 했다. 그리고 재발 방지 방법을 들은 어르신들과 이웃들은 서둘러서 해보라며 만족해하셨다.


 그 방법이라는 것이 쓰레기 배출 공간 근처에 가짜 CCTV를 설치하는 것이다.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만 하면 될 것이기에 진짜처럼 빨간 불까지 반짝거리는 가짜 CCTV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이 있으니 그런 생각도 한다고 우리 집에도 몇 개 달아 달라고 농담까지 하셨다. 또 한분은 목소리를 급하게 낮추시더니, 비밀이야 우리만 알고 있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이미 어둑해진 시간, 모기들도 기승을 부리고 시원한 해결책도 나왔으니 한분 두 분 집으로 돌아가셨다.


 며칠 후 우리는  위엄 있게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CCTV를 설치했고,  ‘CCTV설치’라고 진하게 인쇄되어 있는 노란 스티커는 잘 보이는 곳에 붙였다. 나무판에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마세요 종량제 봉투에 꼭 버려주세요. CCTV 설치 - 주민 일동- ‘  이란 글까지 써서 잘 보이는 곳에 놓았다.


 지금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쓰레기더미는 깨끗하게 치워져 있다. 무늬만 CCTV는 설치한 사람도, 무늬만이라는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위력을 가진 채 잘 버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라보는 사람의 눈을 압도할 만큼 번뜩이는 빨간 불빛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는 서슬 퍼런 침묵의  메시지를 쏟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 분리배출 공간은 그전보다 놀라울 만큼 깨끗해졌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남편의 사천 원짜리 아이디어는 가격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높은 가치를 보여 주었지만, 4000원짜리 무늬만 CCTV를  칭찬하는 현실이 우스우면서도 안타까웠다.[도연]

매거진의 이전글 엄 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