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세월이 흘러 30년 이 길을 걸었다.
아련한 불빛이 좋았다.
[난 맞고 넌 틀리다.]가 없는 삶을 꿈꾸었다.
24명의 학생과 연구소 자리를 바꾸지 않았다.
40일의 금식과 강남 대형교회의 행정수석목사 자리와 바꾸지 않았다.
지금 되돌아보면, 미련했다.
뭐 그리 나의 신념이 중요하다고…
가족을 생각하지 않고 나의 탐욕을 채우려 했던 건 아닐까?
그런데
적어도 하나님께 서원은 지키고 싶었다.
1. 기도를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기도 중간 쯤 전화가 온다해서 기도를 접지 않는다.
40일 금식 중이고 지금 21일 째니 기다려 달라 했더니 비웃으며 전화가 끊어졌다.
다시 생각해도 미련한 설정은 아니었다 싶다.
서원을 지키기를 잘했다.
2. “어려운 교회입니다.”, “상처받은 영혼이 있는 교회입니디.”하면 앞 뒤 안 가리고 달려가기였다.
이 서원대로 이력서 없이 지금껏 지나왔다.
육군사관학교만 빼고 ㅎㅎㅎ
아무튼
이리 세월이 흘러 30년 이 길을 걸었다.
뭘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모진 소리를 들으며…
하지도 않은 일을 한 것처럼 만들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이용하겠노란 말을 서슴없이 나와 아내 앞에서 하더니 결국 지역에 그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그랬다.
“그러면 그 가져갔다는 돈의 계산이 안 맞으니 내가 못 받은 돈 달라 했더니 그 말은 그 다음날부터 사라졌다”
왜냐하면, 준돈은 150만원인데 400만원을 가져갔다 하니 4년치 차액을 달라하니 당연히 조용해 질 수밖에… 퇴직금도 안 받고 나왔다.
생각해보니 참 많은 부분을 하나님께 드렸네? ㅎㅎㅎ
100만원
지금도 내가 받는 전부다.
월세와 교통비 통신비 등 모든 것이 다 포함 되어 있다.
가족 부양???
난 능력없는 아빠다.
아내 말대로 신부가 될껄 그랬나?
다행하 3개월전부터 활동비로 30만원을 받고 있다.
물론, 살림과 모든 비용은 아내가 벌어서 아이들을 키우고 독립 운영되고 있다
별거 아닌 별거 ㅎㅎㅎ
이전에 홍대에 카페 이름이 “…………”이었다.
물어보니 “그리고 아무말이 없었다.”였다.
그런데
지금?
스페인으로 가고 싶은 생각을 가장 많이 하게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불편하고 아프신 성도님들의 기도 요청 종이를 들고 하루 종일 기도하며 밥 때를 놓치며 사는 나에게 돌아온 것은…
이해하게 어려운 것이 아닌, 기도하게 싫어지게 하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영혼을 향하던 촛불을 꺼뜨리고자, 기도에 물을 붓는 지금의 이 모습에 그저 탄식이 날 뿐이다.
“말씀읽고 기도하는 일에 전력하며…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노라” 노래하는데 부르지 말라 한다.
그래서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아무 생각없이 사니 지금 버티지, 조금의 생각이라도 있었다면 미쳤겠구나” 싶다.
난 지금 “정치, 경제, 문화, 사회”보다… 주일에 말씀 들으실 때 아픈 허리 때문에 일어났다 앉았다를 해야 하는데 예배와 말씀에 방해 될까 고통을 견디시는 집사님이 마음에 밟힌다.
섬김과 봉사로 교회를 청소해 주시는 권사님들께서 허리와 무릎이 심하게 통증이 오면서도 예배를 위해 닦으시며 오르내리시는 모습에 눈물 짓는다.
그래서 예배 전후로 틈만나면, 나약하게 짝이 없는 나를 좀 써 달라며 하나님께 땡깡 부리며 “성도님들 한 분 한 분께” 안수기도를 해 드린다.
요즘 기도 받고 아픈게 좀 줄어서 기도로 나을 것 같아서 30년 함께 한 이 통증 사라지게 해 달라며 간절하게 기도하신단다.
뭐가 옳고 그름이 필요 없는 곳이 목회지이다.
눈에 성도님의 영혼만 보이면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나약한 나를 세워 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분들을 위해 강대상을 눈물로 적시는 것이 목회자 아닐까?
설마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데
아내 왈 : “이것마저도 다 비우세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