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르네상스 시대에 종교를 강조하던 화가
프라 안젤리코[La Virgen de la granada. ANGELICO, FRA. 석류의 성모. 1426. P0]
“귀도 디 피에트로(Guido di Pietro)”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1417년 피렌체 화가로 등단을 하면서 많은 작품활동을 하다가 1423년 산토도밍고 수도원에서 수도사가 되면서 “지오반니 다 피에솔레 신부( Fra Giovanni da Fiesole)”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후 그는 삶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에게 보인 모습으로 인해 “천사 같은 신부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당시 조토 디 본도네를 기점으로 그 뒤를 마사치오가이었으나 1428년 사망했다.
하지만 프라 안젤리코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으며, 이후 기베르티의 조각 등 많은 예술가의 활동 속에서 얻은 영감을 프라 안젤리코는 그림 속에 녹여냈다.
수많은 르네상스 초기의 화가들이 사라지면서 프라 안젤리코에게 집중이 되면서 자연스레 화가로서의 기본인 물감을 충분히 비치하고 있는 상황이 되어야 해서일까?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은 화려한 색상으로 우리 곁에 다가오게 되었다.
당시 르네상스는 “Who am I?”에서 시작되었지만, 프라 안젤리코는 종교화 쪽의 발전으로 이끌어간다.
과거 이콘화에서 보던 단순함에서 벗어나 화려하고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오기 시작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라 안젤리코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림으로 그려내기 시작한 첫 화가라는 점이다.
그리고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고, 무릎을 꿇고 그림을 그렸으며 십자가의 예수를 그릴 때는 항상 눈물로 바닥을 적셨다고 한다.
콰트로센토(Quattrocento.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시작한 르네상스의 첫 번째 단계로 1450~1564년 기간을 지칭한다)로 인해 이탈리아는 상당한 변화를 겪기 시작했고, 특히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메디치 가문”과 “스포르자 가문”의 후원 속에 엄청나게 성장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이 작품 속 “석류(GRANADA)”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모 마리아의 손에서는 “순결”을 말하고,
아기 예수의 손에서는 “죽음과 부활”을 예고한다.
이러한 다양한 기법의 도상학적 시도는 산드로 보티첼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관심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금의 풍요로움은 성모의 명예와 거룩함을 더욱 돋보이게 한 발상이었고, 이들이 앉아 있는 풀밭의 모습으로 인해 비례와 균형을 중시하는 프라 안젤리코의 마음을 그대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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