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Tránsito de la Virgen. MANTEGNA
안드레아 만테냐[El Tránsito de la Virgen. MANTEGNA, ANDREA. 성모의 임종. 1462. P0]
만테냐를 일컬어 콰트로센토의 화가라고 칭하면서 그의 재능적 의미들이 주목받기 시작을 했다. 특히 만테냐는 고전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아 연구했었고, 특히 파도바의 프란체스코 스쿼치오네와 함께 작업을 통해 회화의 표현력이 탁월함이 드러나게 된다. 고전 미술에 탁월한 능력을 지녔고, 특히 공간감을 다루는데 당대 최고였다. 그래서일까? 그림 표현 속에 인물의 표현력이 자세하게 드러나 있다. 이탈리아에 있던 모자이크를 모티브로 그린 그림인데, 그 모자이크는 안드레아 델 카피뇨가 그렸던 구성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특히 실내와 실외의 대조를 구성하면서 마치 내가 실제로 그 장소에 서 있는 느낌이 들도록 그린 그림이다.
17살의 나이에 상당이 앞서가는 그의 실력은 1453년 조반니 벨리니 가정의 니콜로시아 벨리니(야코포 벨리니의 딸)와 결혼을 했다. 그러면서 스쿼치오네와는 더욱 경쟁자가 되어 버렸지만, 자신의 그림에 대한 실력은 엄청나게 진보하는 계기를 낳는다.
곤자가의 루이 3세는 1458년 만투아의 두크성 예배당을 위한 이 작품을 의뢰했다. 이후 많은 변화와 소유의 변동 속에서 작품의 손상이 생겼고 1990~1991년 프라도 미술관에서 어두운 광칠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춘 복원 작업을 거쳤다.
그림을 살펴보면, 침대 주변에는 심각한 상황을 맞이한 무리가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어머님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예수와 제자들이 함께 온 것이다. 그들의 손에는 성모에게 경의를 표현하는 물건들이 들려 있다(시리오스라 부르는 촛불, 종려나무 가지, 책과 향). 이둘 중 가룟 유대는 죽어서 없지만, 이후에 뽑힌 맛디아가 있다. 그런데도 11명인 이유는 도마 복음서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도마가 인도로 선교여행을 갔기 때문에 이 장소에 없는 것으로 그렸다.
배경이 등장하는데, “만투아의 호수”다. 특히 저 호수에는 “산 조리지오(SAN GIORGIO)라고 불리는 다리가 서 있는데, 사실적인 배경을 그림 속에 넣은 화가가 바로 만테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장소가 예루살렘이 아니라, 만투아의 궁전이라는 사실이 의외이가는 하다.
이 그림의 스타일은 전형적인 베네치아 스타일로 평소에 사용하던 스타일처럼 차가운 색상으로 임종의 상황을 피부로 느끼게 그렸다. 하지만, 주변의 조경을 보면 역시나 조반니 벨리니의 영향력이 풍기고 있기도 하다.
하이로jairo의 출판을 하려다가 공개하는 개인 저작글이니 퍼가시거나 인용시 출처를 반드시 밝려 주시고 아래 댓글에 꼭 남겨 주세요
#만테냐 #성모의임종 #성모의죽음 #배경사실화 #서양화가 #동양화가 #작품도슨트 #도슨트 #도슨트서영석 #서영석 #프라도미술관 #프라도미술관도슨트 #미술강의 #강의문의 #강의문의dm #기업강의 #프라이빗강의 #미술사강의 #아트스타그램 #아트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