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 직품을 천사의 피에타라 부른다
안토네요 데 메시나[Cristo muerto sostenido por un ángel. MESSINA, ANTONELLO DE. 죽은 그리스도를 받치고 있는 천사. 1475~1476. P0]
“만일 메시나가 없었다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나리자를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해도 전혀 어색한 말이 아닐 수 있는 것이 바로 당시 르네상스 초기는 피렌체를 중심으로 움직였고,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은 템페라 기법(달걀노른자나 흰자에 물감을 섞어 그림을 그리는 기법. 아크릴화처럼 빠르게 마름)이었다. 그러다 보니 은은한 색 처리나 “스푸마토 기법”처럼 자연과의 경계선 사이에 맞닿은 인체의 부분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었다. 이 틀을 깨뜨려 준 것이 바로 안토네요 다 메시나이다. 나폴리에서 그림을 배우면서 조르지오 바사리에 의하면 얀 반 에이크의 직접적인 제자라고 생각은 되지만, 안토네요 다 메시나는 플랑드르나 네덜란드로 여행한 것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들여다볼수록 놀라게 하는 “얀 반 에이크”나 “로히에르 판데르 웨이덴”의 그림을 만나지 않고는 그릴 수 없는 그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메시나는 플랑드르 회화, 콰트로센토의 이탈리아를 체험, 베네치아 회화의 색상과 빛을 다루는 터치 등에 큰 영향을 미쳤고, 자신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인해 주변 화가들의 능력을 하나로 합쳐서 완성해내는 쾌거의 작품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그 뒤의 배경 속에 등장하는 마을과 성당의 모습이 안토네요가 살았던 메시나 지역이다. 그런데 천사와 예수를 표현하던 그 섬세하면서 흐르는 정적과는 달리 배경이 너무 단순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많은 학자는 야코벨로의 도움으로 이 그림을 완성했다고 믿었다.
이 그림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고전적인 해부학에 따라 움직인 예수의 몸을 볼 수가 있다. 르네상스 회화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기법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학(시체를 무려 30 구체를 혈관까지 해부)과 미켈란젤로의 해부학(근육까지만 해부)이 당시 영향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미는 이미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모습이 다시금 이 시대 속에 재현되어가는 흐름과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작품이다.
이 그림의 또 다른 측면은 “그리스도의 얼굴”이다. 저 얼굴 어디에도 “고통의 표현”이 없다.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그저 멍하게 잠을 자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만 뒤에 있는 천사의 눈물을 보지 않고 허리의 창 자국과 손의 못 자국을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 산이 골고다(해골산)의 표현이기를 바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녹색의 올리브와 왼편의 해골(보통 “메멘토 모리("자기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이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를 생각)이 이를 뒷받침하는 듯 꾸며졌으나 결국 메시나의 지역적 환경을 그렸기에 우리에게 또 다른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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