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재판 때문에 소환된 영혼
페드로 베루게테[Auto de Fe presidido por Santo Domingo de Guzmán. BERRUGUETE, PEDRO. 도미니크 수도사가 주관하는 종교재판. 1493~1499. P0]
페드로 베루게테의 작품은 의외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카스티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었고, 또 톨레도 대성당의 한 부분을 제작했으나 지금은 사라져 없어져 버렸다. 르네상스가 시작되었음에도 스페인 카스티야 자체적인 원근법과 카스티야의 상황 등을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도밍고 펠릭스 데 구즈만(성 도미니크)은 스페인에서 출생으로 오스마의 도미니크 또는 칼레루에가의 도미니크로 불린다. 이후 성장 과정에서 수도원을 통해 수도사가 되고 자신이 꿈꾸던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도원을 1206년 설립하게 된다. 그리고 1216년 교황 오노리오(Onorius)의 인가를 받아 본격적인 활동하게 되었다. 초창기에는 청빈을 중요시했고, 탁발 수도사로서 생활했기 때문에 거지 수도회, 탁발 수도회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엄격한 생활과 학문 연구 그리고 설교와 교육에 힘을 써 왔다. 이후 1234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시성 되었으며, 천문학자의 수호성인으로 지정되었다. 도미니크의 유해는 이탈리아 볼로냐의 산 도미니크 대성당에 안장되어 있다.
도미니크가 중세 종교재판에서 실제로 무슨 임무를 수행했는지는 수 세기 동안 논쟁이 있었다. 도미니크 당대의 역사 기록을 보면 종교재판에 일절 관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정말 도미니크는 최초의 종교재판관이었을까? 아니다. 최초의 종교재판소는 1231년 롬바르디아에 세워진다. 하지만 도미니크는 이미 1221년 사망한다. 1234년 랑그도크에도 종교재판소가 세워지지만, 이전에는 종교재판소 자체가 없었다. 물론 도미니크는 종교재판관이 된 적은 없지만, 초창기 도미니크 회원 중 몇몇이 활동했던 기록은 있다.
그럼 이 그림은 무엇일까? 왜 도미니크가 종교재판을 펼치고 있는 것일까? 스페인에서 [15세기 스페인 종교재판]을 도미니크가 재판관으로 주재하는 모습으로 그려달라고 페드로 베루게테에 요청한 것이었다. 즉 스페인의 이단 심판관들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일종의 전설을 만들어낸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 이미지는 후대에까지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정설에 가까운 일이 되어 버렸다. 그 때문인지, 독일의 개신교 비평가들은 도미니크 회를 자신들의 무서운 적수로까지 인식하게 되어버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내용을 밑바탕으로 세밀하게 분석하면, 아빌라에 있는 산토 토마스 수도원의 제단화였던 이 작품은 도미니크가 당시 교황인 인노첸시오 1세의 명령에 따라 도미니크가 프랑스 남부 랑그독 지역의 이단인 카타리파를 전멸시킬 것을 명령했다. 카타리파 또는 알비파, 순수파라고 불리는 이들은 12세기에서 13세기 프랑스 남부 알비와 툴루즈를 중심으로 이원론과 영지주의를 바탕으로 생겨났는데, 교황청이 이단으로 파문을 하고, 1209년 알비파 탄압을 위해 알비 십자군을 일으켰던 로마가톨릭에 의해(1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학살을 당하는데, 문제는 종교적인 것보다도 정치적인 계산이 더 깊게 자리를 잡았기에 문제가 많았던 사건들이다) 1350년 카타리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다.
6명의 심판관 가운데서 판결을 내리는 도미니크, 그리고 12명의 배심원의 표정들, 그리고 배심원들의 계단을 내려오면 도미니크 옆에 “툴루즈의 레몽(툴루즈의 레몽 6세로 툴루즈 지역의 강력한 백작이었으며, 카타리파를 후원하던 사람이다.)”이 노란색 옷을 입고 서 있는데, 그 옷에는 “이단 판정”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이 그림의 전체적인 흐름은 심판, 판결, 선언, 처절이라는 주제가 숨어 있다. 특히 한눈에 봐도 재판의 모든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그림으로 보는 이들의 이해를 도왔다. 아마도 이세벨 여왕의 시대가 되는 이 시기의 이 그림은 결국 아랍과의 마지막 그라나다 함락을 앞두고 가톨릭 신앙의 회복을 꿈꾸었던 카스티야 공화국의 자존심을 드러내기 위한 그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시대의 사람이 아님에도 불러들여 마치 지금의 일인 것처럼 그려진 이 사실적인 그림은 이후에도 많은 오해를 낳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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