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에게서 그 아픔 이겨냄을 배우다
아르테미사 젠틸레스키[Nacimiento de san Juan Bautista. GENTILESCHI, ARTEMISA. 세례 요한의 탄생. 1635. P1 S00]
아르테미사 젠틸레스키는 최초의 여류화가로 카라바지오에게 잠시 잠깐이지만, 그림을 배운 사람이다. 하지만 비운을 안게 되었는데, 젠틸레스키는 자신의 후원자이자 친구였고, 동시에 자신과 같은 화가 타시에게 원근법을 배우던 중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하게 된다. 젠틀레스키는 타시의 처벌을 원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당시 법의 허점을 이용한 타시는 젠틸레스키와 결혼을 하겠다며 처벌을 피해간다. 이 일로 오히려 젠틸레스키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부도덕한 여성으로 낙인이 찍히게 되고 수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나 다행히도 카라바지오의 그림지도와 그 속에 자신의 아픔을 투영하며 23세의 젊은 나이로 피렌체에서 미술계의 여류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 그림은 세례 요한이 태어나는 장면인데, 아기 주위에 4명의 여인이 각자의 일을 하며 세례 요한이 출산 후 몸을 닦는 장면이다. 그런데 왼편에 어두운데 앉아 있는 한 남자와 서 있는 두 사람이 있다. 이들이 바로 세례 요한 이야기의 핵심이다.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쓰는 사람은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이다. 그는 천사가 엘리사벳과 자신에게 아이를 낳게 해 줄 거라는 말을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믿지 않는다. 그러자 천사는 그 입을 봉해서 말을 못 하게 한다. 그 글을 쓰고 있는 사가랴의 뒤에 서 있는 여성이 바로 엘리사벳이다. 엘리사벳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엘리사벳에게 이름을 아버지 계열을 따라 “사가랴”로 지을 것이냐는 말에 남편의 뜻을 따라가겠노라 하며 사가랴가 종이에 쓴 “요한”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이 이름은 그 가문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던 이름이라 혼란이 가중되지만, 입이 열리며 자신이 말을 못 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게 되고 그로 인해 세례 요한은 예수의 사촌 형으로 예수의 앞길을 예비하는 자로 사는 삶을 살게 된다.
이 그림의 특징은 카라바지오의 특징인 테네브리즘을 좀 더 확장해서 사용한 모습이 보인다. 어둠 속에 감추어진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카라바지오의 다윗과 골리앗에서 보던 테네브리즘이다. 하지만 창가로 비추어 오는 빛의 효과보다는 아기 예수의 강한 빛으로 인해 빛을 다루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아기로부터 발산된 빛도 세례 요한의 왼편과 오른편 앞부분에 있는 두 사람의 어깨 부분에는 외부의 빛이 비치는 모습을 보인다. 사가랴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르테미사 젠틸레스키는 주변의 역학적 빛의 활용과 아울러 테네브리즘의 활용을 통해 자신이 강조하고자 하는 명확한 이미지 전달에 탁월한 그림을 그렸던 화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