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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iro Mar 10. 2022

수르바란의 성화 이야기

놀라스코 앞에 나타난 베드로

 프란시스코  수르바란[Aparición de san Pedro a san Pedro Nolasco. ZURBARÁN, FRANCISCO DE.  베드로 놀라스코 앞에 나타난 베드로 사도. 1629. P1 S00]

 

    스페인 화가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an, 1598~1664)은 성인들의 비전을 그림으로 많이 남겼다. 그의 대표작인 이 작품에서는 ‘사죄의 성모’ 수도회의 설립자인 성 베드로 놀라스코(Petrus Nolasco, 1189~1256)가 묵상 중에 보게 된 성 베드로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오른쪽에 성 베드로 놀라스코는 무릎을 꿇고 조용히 명상에 잠긴듯하다. 그가 묵상하던 중 불현듯 나타난 것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성 베드로의 모습이었다. 왼쪽에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못 박힌 사도 베드로의 순교 모습은 빛과 어둠의 강한 명암대비를 이루며 등장하고 있다. 이것을 바라본 놀라스코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순간의 경이로움을 두 팔 벌려 응답하고 있다. 그의 감긴 눈에서는 그가 기도에 몰입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실질적으로 영혼의 눈으로 비전을 보고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육신의 눈이 아니라 내적인 영의 세계에서 바라보고 있다. 바로 비전을 나타낸 그림은 ‘영적 체험’을 눈을 통해 보이도록 묘사한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놀라스코는 평소에 로마에 있는 자신이 좋아하고 사모했던 성인 중 한 사람인 성 베드로의 무덤을 순례하기를 원했으나, 그의 형편상 순례를 떠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3일 밤 연속으로 성 베드로가 그의 꿈에 나타나 그를 위로해주었고, 세 번째 밤에는 놀라스코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중 성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나타났다고 한다. 성 베드로는 그에게 스페인을 떠나지 말고 평생 그곳에서 살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그는 두 가지 비전을 보았다고 하는데, 한 가지는 바로 그의 자신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고 좋아했던 성 베드로의 십자가 순교의 모습이고, 다른 한 가지는 천상의 예루살렘을 보았다는 것이다.


    거꾸로 매달려 피가 머리로 몰려있는 성 베드로는 자신의 앞에 앉은 놀라스코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놀라스코도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처럼 두 팔을 벌린 채, 자신이 꿈에 그리던 성인과 완전히 마주하고 교감하고 있다. 물론 그는 성 베드로처럼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는 않지만, 자신이 따르고 싶어 했던 성인의 자세를 따르려는 의지를 몸동작으로 보인다. 이렇게 화가는 놀라스코의 동작을 통해서, 성 베드로가 살아간 길, 순교의 길을 따르려는 영성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수르바란은 이러한 영성의 메시지를 성 베드로의 시선을 통해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연결하고 있다. 순교자의 참된 삶과 얼을 ‘영적 체험’으로 접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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