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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iro Mar 11. 2022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의 모습을 양을 통해 가장 가슴 깊게 그려낸 작품

프란시스코  수르바란 Agnus Dei. ZURBARÁN, FRANCISCO DE. 하나님의 어린양. 1635~1640

AGNUS DEI : 라틴어로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기독교에서 예수를 비유하는 표현이다. 고전 라틴어 발음으로는 '앙누스 데이'이지만, 가톨릭식 라틴어 발음으로 '아뉴스 데이'가 되었다.


네 발이 꽁꽁 묶여 꼼짝 못 하는 이 순백의 양은 바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제물로 바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극사실적인 섬세함으로 그려진 양은 어두운 배경 속에서 환한 빛을 받고 있다. 이는 암흑을 뚫고 구원의 빛으로 오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양의 폭신폭신한 털의 질감이 생생하여 그 따스한 감촉이 느껴지는 듯하고, 털의 때 탄 더러운 모습은 더욱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친근하다.


배경의 어두움과 양의 환하게 빛나는 흰색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이 그림은 초장에서 뛰어노는 100마리의 양들보다 파급력은 엄청나다. 죄를 상징하는 어둠 속에서 빛과 희망을 상징하며 구원을 상징하는 예수의 모습은 바로 이런 어린양의 밝게 빛나는 색감으로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예수의 의미를 한 눈에 깨닫게 만들어 준다.


특히, 힘없고 결백한 양은 자신에게 처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감지했음에도 그 눈을 들여다보면 지극히 평안함 그 자체다. 그리고 묶여 있는 발을 보더라도 어디 하나 상함이 없고, 묶여 있다고 거부한 흔적은 하나도 없다. 물론, 화가가 그렇게 그리겠냐?라고 하겠지만, 수르바란이 원한 모습은 자신의 길을 가야하는 그리스도의 발걸음을 이 양의 발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아무리 죄가 얽어 매려 할지라도 순수함과 희망은 결코 막을 수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물리적인 요건이 우리를 막을지라도 정신적인 요소를 결코 지배할 수 없다는 무언의 함성처럼 들려지는 이 그림은 실로 바라볼 때마다 탄성이 나오게 만든다.


영적인 충만함이 느껴지는 이 작품은 암흑의 배경 속, 외부로부터 환한 빛이 비취는 극적인 화면 연출을 통해 천상의 신비를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양의 얼굴이다. 우선 코 끝을 보자. 마치 촉촉하게 젖어 있는 듯 하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것도 아니다. 지극히 평온하다. 원래 양은 눕게 되면 몸에 가스가 차 죽게 된다. 그런 일반적인 상식을 뒤로 하고 바라보는 그 자체로 원망과 불평이 전혀 없고 그냥 편안하게 주인의 품에 안겨 오던 때를 생각하며 나아가는 모습이다.


그리고 수르바란의 작품을 보면, 헤라클레스를 그릴 때의 붓터치는 여기서 보기 힘들 정도다. 오히려 카디스를 그린 작품이나 프라도와 티센에 있는 성녀 이사벨을 그린 것처럼 섬세함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원작을 만나면, 주의해서 최대한 가까이 가보자. 그리고 얼굴을 유심히 보자. 코를 본 후에 눈을 보자. 눈썹이 보이는가? 속눈썹의 처리와 함께 그 눈 빛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절이게 만든다. 이런 작품의 특징은 수르바란의 성 베로니카의 베일(그리스도의 수의)에서도 섬세함과 감성적인 움직임이 확연하게 드러나 보인다.


희생이라는 주제 앞에 바라보는 이들의 불안함을 수르바란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바로 받침대다.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양은 받침대 끝 부분에 걸쳐 있다. 나무일 수도 있지만, 천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누워 있는 부분이 푹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체념이 아니라, 가야 할 길에 대한 순종을 상징하려는 것일까요? 뿔도 모든 것을 내려 놓은 듯 아래로 향하고 있음을 봅니다. 양은 보통 600종류가 되는데, 뿔이 있는 것과 뿔이 없는 것이 있습니다. 염소처럼 위로 솟아 있는 뿔이나 둥글게 말린 뿔을 가진 양들이 있지요. 그래서 종종 그림 속에서 염소와 우리가 혼돈을 일으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실 양을 보면, 왜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는지 알게 된다.


오래전 몽골에서 겪은 일을 통해 이 그림의 의미를 더 깊게 이해를 하게 되었다.


주인은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양 무리 중에서 가장 어린 양을 품에 안고 나왔다. 어린 양은 주인의 얼굴을 보며 한없이 웃기만 반복했었다. 그리고 자신을 탁자에 올려놓고 묶고 있는데도 발버둥 치지 않고,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어준 주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주인이 양의 목에 칼로 상처를 내서 피를 빼자 양은 몸부림이 아니라, 스르르 잠이 들 때까지도 주인에게 한없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이때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아마도 수르바란도 이런 이미지를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이 그림 속 양이 순함과 선함의 극치를 보이는 듯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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