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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이라는 개념으로 마네를 놀래킨 그림

피리부는 소년의 원조 그림

by jairo

디에고 로드리게즈 데 실바 이 벨라스케스[Pablo de Valladolid. VELÁZQUEZ, DIEGO RODRÍGUEZ DE SILVA Y. 파블로 데 바야돌리드. 1635. P1 S00]

파블로 데 바야돌리드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펠리페 4세의 전신 초상화에서 설명했던 부분이다. 벨라스케스의 방에 걸려 있는 펠리페 4세의 형제 돈 카를로스의 초상화(Retrato del infante Don Carlos. 올리바레스 공작 오른편에 그림이 걸려 있다)를 보면, 서로 대칭되는 스타일의 그림이다. 마치 데칼코마니로 그린 듯 유사하다. 다만, 다른 점은 뒷배경 속 구분 선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파블로 데 바야돌리드는 지금 왼발을 앞으로 하고 무게의 중심을 싣고 있다. 그리고 오른손을 힘의 균형을 잡는 듯 보이면서 왼손으로는 가슴에 손을 얹고 있다. 마치 배가 나와 있는 것을 의식해서 가리듯 말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면서 우리는 이상하게 생각하는 점이 하나도 없다. 왜 그럴까? 뭐가 이상하다는 것일까? 멀리서 바라다보면 왼편에 기둥 같은 선이 보이고 두 다리 뒤편에 가로줄이 그어진 듯 보인다. 하지만 전체적인 배경색 속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바로 [무중력]을 그린 것이다. 현시대에서는 무중력을 그린 것이 뭐 그리 대단하냐? 고 하겠지만, 벨라스케스의 1600년대에 무중력의 그림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일이다. 그리고 화가들이 그림을 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고민하는 것이 배로 배경의 처리이다. 왜냐하면, 그 배경에 의해 인물의 구도와 모든 것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벨라스케스의 이 그림은 뒷배경이 단일 색으로 마무리되어 공간에 자리를 잡고 있고 단지 그것이 평지에 서 있다는 것은 그림자 외에는 아무것도 보여주지를 않는다.


둘째는 벨라스케스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와 같은 붓 터치 기법이다. 중립적인 배경 속에 반투명의 붓 터치로 인해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을 보게 하는 터치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림은 고정된 듯하지만, 우리를 향해 무언가 말하려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알브레히트 뒤러의 아담과 이브에게서 만났던 콘트라포스토 자세에서 느꼈던 생동감의 이미지이다.


1866년 스페인 여행이 시작되었을 때, 프랑스 인상주의화가 이자 모더니즘의 선구자였던 에두아르 마네가 이 그림 앞에 섰다. 그리고 그는 한 편의 그림을 완성한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왜냐하면, 종이 인형을 붙여 놓은 듯한 느낌이었고, 벨라스케스의 기법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야돌리드에서는 없는 다리 뒤에 있는 수평의 기준선이 마네에게서는 등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벨라스케스의 바야돌리드 덕분에 “피리 부는 소년”이 탄생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빛에 의한 미술을 색채에 의한 미술로 바꾸어 놓으면서 화면을 꿰뚫어 보는 것에서 화면 자체를 바라보는 것으로 시선을 변화시켜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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