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유령을 보고나면 고야가 더 깊게 이해된다
프란시스코 고야 루시엔테스[La familia de Carlos IV. GOYA Y LUCIENTES, FRANCISCO DE. 카를로스 4세의 가족. 1800. P1 S00]
이 그림은 스페인 왕실의 별장 중에 톨레도에서 쿠엥카 방향으로 1시간 이동하다 보면 조용한 마을이 나온다. 그곳 아랑후에즈에서 여름 휴가를 보낼 때 고야를 불러 그린 그림이다. 아랑후에즈는 음악 속에서도 스페인의 흥망성쇠를 담은 곡으로 유명하다. “아렝후에즈의 협주곡(Concerto de Aranjuez)”을 들으며 스페인의 모습과 안달루시아 지역을 떠나야 했던 보압딜의 알람브라를 포기해야 하는 마음 등을 느끼게 해 주는 음악이다.
아랑후에즈에 도착한 고야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저렇게 세워놓고 그리는 그림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적게는 8개월에서 몇 년은 걸리는데 매일 저 자세로 왕실의 가족을 세워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좌우편을 보면 액자들이 있는데, 주황색 배경에 얼굴 그림들만 그리다 만 것처럼 진열되어 있을 것이다. 바로 명함판 사진을 그린 것이다. 얼굴만 완벽하게 그리고 난 후 승인을 얻으면 그 그림을 가지고 나머지는 화가의 재량으로 그리는 것이었다.
이 그림은 카를로스 4세의 가족 그림이다. 마리아 루이사 드 팔마 여왕은 정 중앙에 공주와 왕자의 손을 잡고 서 있다. 그리고 카를로스 4세는 왼편으로 비켜져 있다. 카를로스 4세 뒤에 얼굴만 나오고 눈이 커다란 사람은 동생으로 초대 마드리드 시장이다. 그 옆에 옆 모습으로 보이는 사람은 동생의 부인으로 이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 죽은 사람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부부는 딸과 사위이다. 부르고뉴에서 삶을 살았지만 둘 다 건강이 좋지 않아 죽게 된다. 그리고 손에 들른 아이도 두 사람이 근친혼에 의해 유전적 결함으로 등이 굽은 아이를 낳게 된다. 이처럼 상처가 가득한 집인데 죽음도 빨리 맞이하게 된다.
왼편으로 가게 되면, 카를로스의 누이라고 하는 노파와 그 옆에 파란색 옷을 입고 있는 페르난도 7세 그리고 얼굴 없는 여인이 등장한다. 얼굴 없는 여인은 페르난도와 정혼 한 사람이다. 지금 아랑후에즈로 오고 있는데, 고야는 이 얼굴 스케치를 마무리하고 2달 만에 마드리드로 서둘러 복귀를 했기 때문에 그녀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빼 버린 것이다. 그리고 맨 오른쪽에 “고야의 오마주”가 등장을 한다. 자신의 스승 벨라스케스를 흉내 내면서도 왕실과 다른 이질적 존재임을 그림 속에 담기라도 한 듯이 자신은 어둠 속 그림자에 감추어버린다.
이 그림의 재미난 우화는 2가지가 있다. 첫째는 카를로스 4세의 자세이다. 카를로스가 고야에게 화가 나서 따졌다고 한다. “왜 내가 오른편으로 비껴 그림에 등장하는가?”라고 말이다. 그래서 고야는 “그래도 왕이여, 왕은 한 발 앞으로 나와 있지 않습니까?”라고 했단다. 하지만 그림자 속에 페르난도는 2발이 다 앞으로 나와 있다. 이 말을 하게 된 이유는 마리아 루이사 드 팔마가 정 중앙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를로스 4세는 마리아 루이사 드 팔마를 앞서갈 수 없는 존재였다. 심지어 마리아 루이사가 자신과 결혼 하기 전에 사귀었던 마누엘 데 고도이를 결혼 후에는 스페인의 총리로 세우면서 자신의 안위를 지키게 하는 사람으로 세웠으니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물론 마리아 루이사 드 팔마와 고도이의 관계는 지속되었고 이로 인해 마리아 루이사 여왕의 두 팔에 있는 공주와 왕자가 바로 고도이의 자식이라는 설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마리아 루이사 여왕은 자신의 팔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나머지 각종 모임에서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팔을 내미는 민소매 스타일의 옷을 못 입게 했고, 모두 토시를 착용하게 했다는 웃음거리의 이야기도 존재한다. 아무튼, 왕과 왕비는 스페인을 파멸로 가게 만드는 장본인이 된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 설명보다 이 그림이 위대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고야만이 낼 수 있는 색채감이다. 고야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로코코 양식의 화려한 금장식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고야의 그림 어디에도 황금색을 사용한 흔적은 없다. 다만 옅은 흰색과 진한 흰색 그리고 노란색 계열뿐이다. 그런데도 옅은 흰색 위에 덧칠한 진한 흰색은 빛에 의해 빛남으로 주변이 유리를 갈아서 뿌려 놓은 듯 화사하게 빛을 발하는 현상을 이루었다. 글레이징 기법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빛이 날 수 있는 그림은 고야의 놀라운 색채감의 능력이다. 그래서 이 그림을 멀리서 보면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지만 정작 가까이 가서 보면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그 느낌이 밀려온다. 역시 멋진 스승과 제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