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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심정이었을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들리지 않는 환경 속에서 새로이 일어난 고야

by jairo

프란시스코 고야 루시엔테스[Cristo crucificado. GOYA Y LUCIENTES, FRANCISCO DE.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1780. P1 S00]

마드리드 왕실에서 태피스트리(양탄자) 밑그림을 그리던 프란시스코 고야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만 쉽지 않은 왕실 소속 화가의 길에 고배를 마신다. 그러던 중에 접한 자신의 스승이라 일컫는 벨라스케스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만나게 된다. 물론 이 외에는 벨라스케스의 수많은 그림을 모작했지만, 아쉽게도 벨라스케스의 빛을 이용한 물감의 활용에 대해서는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보인다.


수많은 그림을 따라 모작한 가운데 가장 성공작이라고 해야 할까? 벨라스케스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이미지를 가장 이상적으로 표출한 작품이다.


보통 십자가의 예수는 두 가지 패턴이다. 우리가 볼 때 왼편으로 고개를 떨군 경우에는 그림을 바라보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감성에 자극이 되도록 하는 의도가 있는데 그것을 주로 활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른쪽은 하늘을 향해 외치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왜 나를 버리셨나요?”이다. 이성적인 외침 속에 답을 구하는 장면의 그림이다. 벨라스케스의 십자가는 감성의 호소였다. 그래서 두 발에 못 자국을 내었어도 감성적인 호소 덕분에 다행히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고야는 그 두 발의 의미는 그대로 담았다. 그런데 아직 못 박힌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라 그럴까? 피의 흐름과 양이 다른 십자가의 그림들과 달리 적다. 그리고 또 하나 벨라스케스나 수르바란 등의 십자가 예수는 전반적으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강력한 빛의 효과로 십자가의 고통을 표현했다. 하지만 고야는 정반대의 형태를 취했다. 엘 그레코의 우화에서 보던 내면의 빛을 사용했다. 그래서 심장 부분이 밝고 멀리 갈수록 어두워지는 패턴을 사용했다. 언뜻 보면 키아로스쿠로의 기법이 보이기도 한다. 또 스페인의 전통적인 붓 터치의 배경인 어둠이 존재하게 그렸다. 오직 십자가의 예수만이 드러나도록 그렸는데, 그 중심이 바로 심장인 것이 당시 모든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 준 것이다. 신이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 저 심장의 뜨거움으로 모든 것을 감당했다고 말이다. 이 그림으로 인해 고야는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자신의 그림에 대한 꿈을 마음껏 펼쳐 나가는 계기가 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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