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 옷을 입은 마하

수많은 논쟁의 중심에 늘 해결하려는 한국의 손길이 있다

by jairo

프란시스코 고야 루시엔테스[La maja desnuda Y La maja vestida. GOYA Y LUCIENTES, FRANCISCO DE. 벌거벗은 마하, 옷을 입은 마하. 1795~1800, 1800~1807. P1 S00]

우르비노의 비너스, 거울을 보는 비너스 등 비너스를 주제로 한 많은 누드화가 과거 예술계의 주된 작품의 소재였다. 하지만 비너스와 수산나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등장한 한 누드화가 있었다. 그로 인해 세상을 발칵 뒤집혔다고 해야 하나? 바로 그 작품이 이 “옷을 벗은 마하”이다.


“마야 부인”이라고 과거 불렸었는데, 지구상 어디에도 마야 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하라는 단어 자체가 “20대의 젊디젊은 남녀를 지칭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2층에 올라가면 테라스에 있는 마하들, 기타 치는 마호가 있다. 남자는 마호라고 부르고 여자는 마하라고 부른다. 그럼 이 그림의 진짜 제목은 무엇일까? 옷을 벗은 마하가 맞다. 그럼 왜 굳이 마하라고 붙였을까? 지금도 이 그림의 얼굴이 누구냐는 의견이 분분하다. 알바 공작부인이라는 설, 고도이의 애첩 페티타라는 설 하지만 고야의 아들이 이 그림에 대해 “아버지는 이 그림을 비너스를 그린 것이라고 했다.”라고 함으로 더 혼란 속에 빠지게 했다. 결국, 그림의 주인공은 고야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 되어 버렸다.


옷을 벗은 마하가 처음에 등장했고, 고도이의 소유가 되었다. 고도이가 총리에서 쫓겨나면서 재산 정리할 때 이 옷을 벗은 마하가 세상에 공개가 되었고 당시 스페인에 있던 종교재판소에서는 이 그림으로 인해 난리가 났다. 불경죄였다. 하지만 누드화는 줄곧 있었다. 그리고 더군다나 벨라스케스 역시 이탈리아 유학 중에 지금은 영국으로 가 있는 [거울을 보는 비너스]라는 제목으로 20대 때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이 누드로 누워서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있다. 하지만 벨라스케스의 명성은 대단하였기에 무마된 듯 사라졌다. 하지만 고야의 이 마하는 아무리 봐도 비너스다움이 보이지를 않는다. 더군다나 비너스의 관능적 몸매도 아니고, 또 조르조네로 인해 구성됐던 누워있는 자세도 아니다. 그래서 재판소는 결국 옷을 벗은 마하에 옷을 입히도록 명령을 내리지만 고야는 새로이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항변을 한다. 다행히 두 작품 다 온전하게 남아 우리의 곁에 있기에 자칫 옷을 입은 마하의 원그림을 벗겨내어 속에 그려진 그림을 찾아낸다고 훼손시킬 뻔했다.


그런데 왜 이런 논쟁이 생긴 것일까? 이 마하는 기존의 통념을 깨뜨린 사실상 최초의 일반인 여성을 그린 누드화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드렸고 도전장을 내민 것에 이들은 고야의 행동이 수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백성을 생각했던 고야의 뚝심은 위대한 작품을 우리 곁에 그대로 남겨두게 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마하를 보통 알바 공작부인이라고 하는데, 이 그림을 원래 주문한 사람은 고도이었다. 그러나 완성된 이후에 세상에 드러난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개인 밀실에 걸려 있었기에 아무도 몰랐다(같이 있던 티치아노의 누드화와 벨라스케스의 누드화는 알바 공작부인이 고도이에게 선물한 부분이다). 고도이 실각 후 발견된 이 그림이 과연 누구일 것이냐는 논쟁은 가열되었고, 당시 스페인 최고의 권력가 가문은 알바 공작부인과 닮았다는 이유를 달았다. 왜냐하면, 알바 공작부인의 초상화를 그릴 때 검은 옷을 입은 모습 속에서 손가락으로 바닥의 1789년 고야를 가르치고 있고 흰옷을 입고 강아지와 있는 알바 공작부인 역시 바닥을 가리키며 1789년 고야를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화가들은 자기들을 드러내고픈 마음에 여러 가지 기법을 사용하는데, 이렇게 손가락으로 가르치는 곳을 보면 자신의 서명이 쓰여 있음을 보게 된다. 만일 손가락 그림을 가지고 고야의 연연이었기에 그를 그린 것이라고 하면 세고비아에서 15분 떨어진 스페인이 합스부르크에서 부르봉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된 펠리페 5세가 머물렀던 라 그랑하 데 산 일데폰소의 수많은 태피스트리 중에 이브가 손가락으로 뱀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이브는 뱀을 사랑했다는 말인가? 짐작은 자칫 가설을 정설로 만들어버리는 오류를 만든다. 아직도 이것이 바르다고 설명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고려대학교 법의학과 문국진 교수가 쓴 책에서 이 부분을 다루었고 직접 알바 가문의 무덤을 열었고 시신이 이미 훼손되어 없자 유전자를 조회해서 확인할 결과 알바 가문과는 그림의 일치점이 2%도 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때 페티타에 대한 자료로 80%가 넘는 확률을 얻었지만, 문국진 교수 역시 최종적인 답변은 고야가 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미궁에 빠져 있는 그림이다. 그러나 누구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가장 대중적인 스페인의 젊은 여성의 일반적인 얼굴을 그렸기에 마하는 지금도 보는 이들이 많은 생각이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다.


이 그림이 종교재판소에 넘겨진 것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너무 야하게 쳐다보거나 음부에 털을 그려서 그런다고 하는데 솔직히 고야 당시 음부에 털을 그리면 음탕한 뜻으로 사용되었었고 당시 “마하”라는 뜻은 오늘날과 달리 음탕한 의미를 지닌 단어로 불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그림이 종교재판소에 걸린 이유는 이런 것이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누드화는 정해진 규율이 있었다. 하지만 벨라스케스도 그렸다고 하지만 그 그림은 이곳 스페인이 아닌 이탈리아에서 그려졌다. 다시 말해 스페인은 종교재판소가 사라지는 1890년대까지 누드 금지국가였다. 그런데 비너스나 수산나도 아닌 일반 여성을 누드로 그렸으니 충격 아닌 충격이었다. 이로 인해 금지령을 내렸던 것이고 수정 명령을 내렸다.


아무튼, 많은 이들이 지금도 연구와 논쟁 중이다. 그림 속 주인공이 누구냐로? 마치 모나리자에 관한 이야기와 똑같다. 하지만 정말 고야는 이 그림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이러니한 것은 누드화에서는 보지 못하던 것을 옷을 입은 마하에서는 보인다. 옷감의 붓 터치를 보면 옅은 부분과 진한 부분의 흰색으로 인해 가까이에서는 뭔가 어색한 붓놀림으로 보이는데 원거리로 이동할수록 빛에 의해 반사되는 진한 흰색은 화사한 햇살을 받아 빛나는 그러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 이것을 고야는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가까움 뿐 아니라, 멀리에서도 바라볼 수 있는 사물의 모습을 말이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의미처럼 들리는 공간이 바로 옷을 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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