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을 잃으면 광기가 드러난다
프란시스코 고야 루시엔테스[Saturno. GOYA Y LUCIENTES, FRANCISCO DE. 사투르노. 1820~1823. P0 S00]
2층 루벤스의 방에 있는 토성 “사투르노”와 비교하면 참으로 다른 느낌이 밀려온다. 오히려 고야의 이 그림이 들 잔인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루벤스의 그림은 아버지가 아들의 심장을 뜯어 먹는 장면으로 나오면서 아기의 절규가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그림이 잔인함이 드러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를 섬뜩함보다는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변했을까? 라는 생각이 밀려오게 된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시조가 가이아 대지의 여신이다. 이 여신이 우라노스와 키클롭스 형제들 그리고 타이타늄족을 낳는다. 우라노스를 남편을 맞아들여 살지만, 가이아는 폭군의 모습을 지닌 우라노스가 너무 싫어서 결국 아들 사투르노(일명, 크로노스)에게 부탁을 한다. 아빠를 죽여달라고 말이다. 결국, 어머니의 소원대로 아버지의 성기를 잘라 죽이게 된다(버린 이 성기는 바닷속에 가라앉게 되는데, 거기서 거품이 나오더니 비너스가 그곳에서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우라노스는 사투르노에게 저주를 퍼붓는데, 자신처럼 자식에게 죽게 될 것이라는 신탁이다.
이에 사투르노는 레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포세이돈, 둘째 하디스, 셋째 헤라 외에 2명의 여자를 잡아먹는다. 6번째 아이를 밴 레아는 결국 몰래 출산을 하고 대신 돌을 옷에 싸서 침대에 놓자 사투르노는 와서 그 돌을 또 씹어 먹는다. 이에 레아는 지혜를 발휘해서 멀리 떨어진 깊은 바다의 한 섬에서 아이가 자라게 한다. 이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려고 부족민들은 24시간 노래와 춤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제우스가 등장할 때 꼭 원주민들의 모습이 연관되어 나타나는 것 말이다. 아무튼, 제우스는 성장해서 자신의 아버지 사투르노를 찾아와 약을 먹이고 자신의 형과 누나들을 토하게 만든다. 이후 신탁대로 깊은 어둠에 갇히게 된다. 이후 성인인 제우스는 그대로 신들의 왕이 되고, 도움을 받은 형제들이 그 곁을 지키는 모습으로 우리는 신화를 접하게 된다.
이 그림 속에서 사투르노는 이미 대상자의 목과 우리가 보는 오른편의 팔을 잘라 먹었다. 지금은 왼팔을 자신의 입속에 욱여넣는 모습을 보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루벤스의 그림과 달리 지금 사투르노의 손에 쥐여 있는 대상은 아이의 몸이 아닌 여자의 몸이다. 고야는 아마도 자신의 옛 모습을 회상하며 회개의 의미를 담지 않았을까? 돌아다니게 되는 장면이다. 그리고 키아로스쿠로 기법의 적용이 된 것처럼 꿇고 있는 두 무릎은 사투르노의 불안정한 현재와 미래를 지칭한다. 결국, 이 광기의 정점은 사투르노의 두 눈이다. “이성을 잃어버리면 광기가 드러난다.”라는 고야의 말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최고의 작품이다. 하지만 고야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을 돌아봤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유일한 아들만 살아남은 것처럼 자신의 젊은 시절의 방탕함이 태어나는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자신의 이야기이며, 저 손에 얼마나 독기가 가득했으면 자신의 욕망이 얼마나 강했으면 살을 뚫고 들어갔을까? 이처럼 자신의 삶으로 인해 아파했던 부인 호세파에 대한 회한의 고백이 내포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잔인성보다는 그 내면의 절규가 드러나 보이는 최고의 작품이다. 아울러 오른편에 있는 수염의 노인이 자신의 모습이고 뒤에 있는 자가 악마라며 자기가 악마에게 속아서 이렇게 세상을 원망하며 살았다고 했는데, 이제 고야의 마음은 원망이 아닌 모든 것이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진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자서전적 회개의 그림들을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밀려오게 하는 이 방은 정말 고야의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