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iro Apr 20. 2022

구도자들의 삶을 엿 볼 수 있는 코어베케의 작품

고딕화가의 직품 성향을 볼 수 있는 그림

2. 요한 코어베케[Johann Koerbecke, La Asunción de la Virgen. 성모의 가정. 1457]

 

    독일 고딕화가로 웨스트팔리안 출신의 최초의 화가이다. 코어베케는 아버지 하인리히에게 그림을 배웠을 것으로 추정하며, 두 자녀를 가졌는데 한 명은 사제가 된 하인리히와 화가가 된 헤르만이 있다. 특히 코어베케는 로베르트 캉팽에 의해 시작된 플랑드르 르네상스 스타일을 처음으로 도입해서 사용한 화가이기도 했다. 코어베케의 스타일은 밝은 색상을 사용하며, 프레델라 스타일의 구조로 구성된 틀에 맞추어 그림을 그리다보니 세부 사항을 이해하도로고 그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별적 특성과 관점에 직관적인 접근 방식을 사용했다. 다시 말해 자신 스스로가 바라보는 자세와 함께 그림 속 구도자들의 삶의 일치를 꿈꾸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은 1457년 하르세윈켈 마을의 마리엔펠트 수도원에서 마리엔펠더 제단을 요청을 했다. 그래서 코어베케는 총 16개의 패널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일대기를 그려서 하나의 제단화로 완성을 했다. 아쉽게도 그림들은 1803년 수도원이 사라진 이후, 웨스트팔리안 국립 미술관에 6개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다.


    지금 보고 있는 이 그림은 전체 16개의 패널로 2단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래에 8개 위에 8개이다. 그 중에 아래의 오른쪽 내부의 그림이며 펼쳤을 경우, 오른편에서 3번째에 위치를 한다. 이 그림의 전반적인 구조의 특징은 상단부의 천상과 하단부의 지상을 그리고 있다. 천상은 구체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맨 위 예수가 성모의 승천을 맞이하고 있는 장면이다. 천사들의 수금고 비파의 연주가 울려퍼지는 천상은 신성의 강조함을 위해 금박으로 배경을 사용했다.


    지상의 부분은 12제자가 찾아와 있는 장면이다. 안드레아 만테냐의 성모의 임종과는 좀 다른 모습이다. 만테냐의 그림에서는 인도로 간 도마가 보이지를 않았지만, 코어베케의 그림에서는 12명이 다 존재를 한다. 물론 가룟 유다는 사라졌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맛디아가 참석을 했다.


    그림 구조성 예수의 제자들이 방문을 했을 때 관은 열려 있었고, 이미확인 결과 비어 있음을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들의 시선처리이다. 이미 승천하시는 성모의 모습을 바라보는 제자가 있고 빈 무덤 속을 들여다보는 제자가 있고 그리고 반대편의 제자들과 옆에 있는 제자를 바라보며 이것이 무슨 일인가? 하는 의문의 표정들을 보게 된다.


    이런 표정의 긴박함은 왠지 모르게 다가오는데, 그림 속 패턴 때문이다. 바로 관뚜껑의 방향이다. 대각선으로 놓인 관 뚜껑은 우리의 시선처리 자체를 불안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야의 그림 1808년 5월 3일에 등장하는 능선의 구도가 바로 이러한 느낌이다.


    천상에 보면 단계적으로 확대가 되는데, 예수와 성모 좌우에 연주하는 천사 무리가 보인다. 3명씩 구성된 천사들은 흰색, 붉은색, 파란색, 분홍색을 띠고 있는데 성모 마리아 역시 푸른색이다. 이 색들은 성경 속에서 사용되어지는 의미들로 순결과 희생, 평안과 위로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성모 마리아의 옷은 당시 청푸른색으로 울트라마린을 만들어 사용하기 전에 재료로 “라피스 라줄리”이다. 준보석으로 주먹 만한 돌을 갈면 아주 소량의 화사하고 밝은 푸른색이 나온다. 이 색은 가로X세로 1cm의 가격이 금 한 개의 값과 맛먹었을 정도라 하니 일반인에게는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금액이었다. 마치 추기경에게 사용되었던 붉은색이 선인장에서 자라는 연지벌레의 피로 만든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귀한 청푸른색을 늘 성모에게 사용했었으나 가격이 만만치 않아 결국 사람들은 울트라마린 계열을 활성화시켜 라피스 라줄리를 대체하는 색으로 활용하게 된다. 그리고 예수와 성모 주변에 둘러싼 천사 무리들, 이후에 구체를 벗어나면 수많은 무리들의 얼굴이 보이는데 과거 순교자들의 얼굴이다.


    천상의 얼굴과 지상의 제자들의 얼굴 표정을 보면 너무나 다르다. 천상은 평안함과 미소가 존재하지만 지상에서는 슬픔과 아픔 그리고 불안과 걱정이 보인다. 아무래도 이끄는 지도자가 없어지고 중심이 흔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이 부분을 코어베케는 정확하게 표현을 해 냈다.


    그리고 이 그림의 놀라운 점은 예수와 성모와는 다른 제자들의 후광이 잘 안 보인다. 그도 그럴것이 하나하나 세밀하게 원형의 점으로 제자들의 후광을 만들어 놓았기에 멀리서보면, 천상의 배경 속에 가리워지나 가까이서 보면 천상의 천사들과 성모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곧 제자들의 머리에도 후광으로 남게 됨을 보게 된다. 이처럼 비잔틴의 기본 틀에서 하나 둘 그 형식을 벗어던지게 된 것이 르네상스의 서막이 열리게 된 이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