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감의 부드러움이깊이 다가온다
23.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é Esteban Murillo. La Virgen y el Niño con santa Rosa de Viterbo. 비터보의 로즈 성녀와 함께하는 성모와 예수. 1670]
“스페인의 라파엘로”로 불리웠던 무리요는 다른 그림들과 다르게 포근하고 따스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마드리드에 있는 미술관을 여행하면서 설명하다 보면, “그림에는 “잘 그린 그림”, “위대한 그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위대한 그림을 넘어서 “따스한 그림”이 있습니다.”라고 한다. 바로 무리요의 그림을 지칭하는 말이다. 어린 시절의 기록이 잘 남아 있지 않지만,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신 후 형제들과 함께 성장했고 후에 세비야의 미술을 접하면서 무리요는 성장을 했다.
무리요가 접했던 화가들은 엑스트레 마두라 출신이었지만 세비야에서 활동을 한 수르바란과 나폴리에 가서 그림을 그린 스페인의 카라바조 호세 데 리베라 그리고 알론소 카노였다. 이들을 통해 다양한 패턴과 흐름을 익혔던 무리요는 이전과 다르게 스페인의 전통 화법에서 벗어나 배경 속에서도 따스함이 묻어나는 화풍으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이런 강한 변화는 마드리드로 올라온 벨라스케스와의 만남 속에서 더욱 두드러진 특징을 보였다.
마드리드의 생활을 접고 벨라스케스의 다양한 화풍을 접한 후 세비야로 내려와 그린 작품들은 주로 성모와 아기 예수를 주제로 삼았다. 특히, “원죄 없는 잉태”로 불리는 “무염시태”는 유럽의 모든 이들이 열광을 하던 최고의 작품이었다. 또 당시 수많은 전쟁과 함께 질병으로 인해 찾아온 황폐화된 마음 속에 무리요의 또 다른 주제인 “어린 아이들”은 희망이 되어 주었다.
톨레도 대성당에서 만난 일데폰소 주교를 찾아온 성모의 모습과 달리 지금 보는 그림은 어린 소녀의 삶을 이야기하는 그림이다. 18세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 어린 소녀가 한 일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당시 기독교를 박해하던 프레드릭 2세의 죽음을 예언하였고 아울러 마을 광장에서 많은 이들에게 성모와 예수 그리고 수많은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을 하게 된다. 이 장면은 로사 성녀의 뒤에 작게 그려진 광장의 모습 속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후에 이 광장에서 로사를 불에 태워 죽이는 화형식을 거행했지만 몸이 하나도 상하지 않은 기적을 모든 사람이 보았다고 한다.
무리요의 그림이 이래서 따스한 그림이다. 어린 소녀는 마음을 다해 오직 “예수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감당했습니다.”라며 엘 그레코의 수태고지에서 성모의 손의 자세를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상징인 흰 장미를 예수에게 내밀자 예수는 그것을 받으려 하고 있고, 성모는 어린 소녀를 위로하며 등을 다독여 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