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를 바라보게 만든 섬세한 붓터치
24. 카날레토(지오반니 안토니오 카날)[Canaletto(Giovanni Antonio Canal). El Gran Canal desde San Vío, Venecia 베네치아, 산비오부터 시작된 큰 포구. 1723~1724]
이탈리아 문학이 활성화되기 시작하고 인기를 끌게 된 것은 “그랜드 투어”때문이다. 기차의 발명으로 유럽의 귀족들이 이탈리아의 여행을 실현하게 됨으로 풍경화의 흐름을 추구하던 이탈리아의 배경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종교개혁의 여파로 인물화 중심의 풍토에서 배경 주심의 그림으로 변화를 이루게 된 것이다. 종교개혁자 칼뱅은 당시 종교적으로 흐르던 성화 등을 금지시켰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림속에 더 빠져 들어가서 오히려 역기능적 사고를 유발한다는 이유였다. 이 두 가지 이유로 그림의 패턴은 자연을 중시하는 “베두타 기법”의 루카 카를레바리스와 함께 카날레토가 인기를 끌게 되었다.
베두타라는 뜻은 “전망”, “조망”이라는 의미로 주변의 풍경을 다루는 그림인데, 다른 풍경화와 달리 카날레토는 플랑드르의 세밀화적 기법이 적용된 그림으로 정확하고 상세하게 그림의 내용을 채워 나갔다. 마치 한 장의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다. 유럽은 이러한 형태의 기법 속에서 그려진 햇빛과 그림자, 대기원근법으로만 여겨지던 구름의 효과, 그리고 건물에 비치는 빛의 잔상을 이용한 활용 등을 잘 갖춘 완벽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문일까? 유럽의 귀족들은 열광을 하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여행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카날레토의 그림은 베네치아와 영국의 교회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 그 화풍을 가지고 후대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조카이자 제자인 벨로토와 프란체스코 구아르디가 있다.
이 그림에서 놀라운 특징은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중심으로 1점 소실점의 정확한 비율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연극무대를 보듯 가까운 거리와 먼 거리 그리고 좌우의 정확한 비율은 4개의 무대 공간을 하나의 종착점으로 다다르게 한다. 마치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클로드 로렝의 파울라 로마나의 승선에서 보여지는 모습처럼 주인공은 좌우의 화려하고 선명하게 그린 건물이 아니라, 배가 건물 사이로 나가게 될 수평선에 떠오르는 태양이다. 카날레토 역시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이루는 베네치아의 산비오 항구지만, 저 멀리 대양으로 뻗어나가는 이탈리아의 힘을 표현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시 말하지만, 로베르트 캉팽이나 얀 반 에이크 그리고 로히에르 반 데르 웨이덴이 그렸던 세밀화의 이미지가 다시금 재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벨라스케스의 사실주의 기법을 에두아르도 로잘레스 마르테스가 재현해 낸 것처럼 말이다.
이 그림을 바라보면서 시대적 흐름의 변화도 느끼지만, 기존의 자연 채광으로 돌아가던 클로드 로랭의 기법과는 달리 카라바조의 인위적인 빛을 다루는 모습이 아닌 자연이 주는 순수 그 자체의 모습으로 투영되어지는 빛을 그려낸 화가이기도 한 카날레토의 위대성은 바로 바다에 비추는 빛에 의해 역반사로 건물을 화사하게 비추는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 낸 것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