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
25. 카날레토(지오반니 안토니오 카날)[Canaletto(Giovanni Antonio Canal). La Plaza de San Marcos en Venecia.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 1723~1724]
2019년 투어 중이었는데, 늘 만났던 인솔하시던 선생님께 베네치아에서 연락이 왔다. 비가 억수로 내리고 있고 허벅지까지 오는 장화를 신었는데 물이 넘쳐서 도저히 보행이나 모든 것이 불가하고 장화 안으로 물이 들어와 난리라며 산 마르코 광장의 모습을 담아 보낸 적이 있다. 그래서일까? 이 그림을 티센 보르네미사에 방문해서 바라볼 때마다 그 사진이 겹치면서 물에 잠긴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그림에서 보듯이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명소는 많지만, 가장 많은 인원들이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멋스러움과 낭만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산 마르코 광장이다. 이 광장에는 중세의 신비 “산 마르코 바실리카 대성당”이 서 있다. 르네상스 초기 필리포 부르넬리스키에 의해 성당의 지붕이 돔 형식이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건물이 세워졌고 아치공법의 활발한 연구로 인해 고딕의 형태로 높아지고 화사해지고 웅장하고 장엄함을 드러내는 성당들이 많이 세워졌다. 그리고 성당 오른편에 종탑 그리고 왼편의 시계탑과 오른편의 두칼레 궁전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림에는 없지만, 광장에 두 개의 기동이 있는데, 하나는 테오도로가 창을 들고 악어를 제압하는 청동상과 다른 하나는 마르코(마가)를 상징하는 사자 청동상이 서 있다.
보통 유럽의 광장은 4면이 모두 건물로 둘러 싸여 있다. 하지만, 이 산 마르코 광장은 3면만 건물로 되어 있고 지금 서서 이 그림을 바라보는 곳은 바다다. 산 마르코 대성당에서 기도 후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으며 관람자의 시선 앞으로 와서 정박해 있는 배를 타고 “대항해시대”의 기치를 올리던 곳이다. 유럽을 제패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이 광장을 보고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원래는 테오도로 성인을 수호성인으로 모시던 베네치아였는데, 9세기 초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매장했던 마르코의 유해를 828년 베네치아로 옮겨오면서 마르코 성인을 네네치아의 수호 성인으로 모시게 되었다. 이후 마르코 성인을 모시기 위해 지금의 대성당을 832년경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이후 수많은 폭동과 전쟁으로 소실되고 978년 재건의 과정을 거쳤다. 이후, 1063년부터 1094년까지 오늘날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베네치아는 십자군 전쟁과 예루살렘 성지순례의 상황 속에서 더욱 발전하는 도시가 되었고 문물 교역이 왕성해지면서 문화와 예술 등 다방면이 골고루 발전하는 도시가 된다. 이때 티치아노가 캔버스를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회화 세계의 폭을 넓혀 주었던 곳이다.
대성당 오른편에 있는 높은 종탑은 9세기에는 등대 역할을 했었고 이후 12세기에는 두칼레 궁전을 지키는 호위병 막사로 사용되기도 했다. 폭이 12M에 높이가 98.6M로 베네치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1489년 화재로 인해 손상되었던 탑은 1511년 지진으로 인해 추가 피해를 받게 된다. 이후에도 수많은 복원과정을 거쳤지만 잦은 화재로 종탑에 균열 등 심각한 상황이 발생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1902년 7월 14일 완전히 붕괴되어 사라졌다. 베네치아는 1912년 4월 25일 성 마르고 축일에 재건을 해서 개장을 해 오늘까지 유지하고 있다. 아쉽지만 과거 중세의 멋스러움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고 현대의 기술력이 동원된 과거의 흔적을 복원을 통해 세운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카날레토가 그린 이 산 마르코 광장의 모습 속에 있는 종탑의 모습은 역사의 뒤안길로 가게 되었다.
참고로 저 종탑 꼭대기에는 5개의 종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원로회를 위한 첫번째 종, 정오의 시간을 알리는 두번째 종, 일과 시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세번째 종, 원로회 소집을 위한 네번째 종, 마지막으로 사형자의 처형을 알리는 다섯 번째 종이었다고 한다.